<?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 version="2.0"><channel><title><![CDATA[LKS410의 사유지]]></title><description><![CDATA[LKS410의 사유지]]></description><link>https://thoughts.lks410.me</link><generator>RSS for Node</generator><lastBuildDate>Thu, 23 Apr 2026 15:01:17 GMT</lastBuildDate><atom:link href="https://thoughts.lks410.me/rss.xml"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language><![CDATA[en]]></language><ttl>60</ttl><item><title><![CDATA[독서 후기 - 동물농장]]></title><description><![CDATA[동물농장을 선택한 이유
읽고자 했으나 지금까지 미뤄왔던 책 중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 농장] 은 인간의 탐욕이 정치에 어떻게 드러나고, 그것이 어떻게 사회에 퍼져나가는지 우화로 풀어낸 소설이다.
필자는 인간의 잠재력은 높게 평가하나, 그 원동력인 [욕망] 은 어느 수준을 넘으면 이를 뒤로 잡아당기는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파괴적인 힘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좋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무시할 수 없는 유혹을 지녔기에 사회는 욕망을 바탕으로...]]></description><link>https://thoughts.lks410.me/64f7iscio2bhoq4scatioupmeusvougjeyepq</link><guid isPermaLink="true">https://thoughts.lks410.me/64f7iscio2bhoq4scatioupmeusvougjeyepq</guid><dc:creator><![CDATA[LKS410]]></dc:creator><pubDate>Fri, 10 Oct 2025 12:39:57 GMT</pubDate><content:encoded><![CDATA[<h2 id="heading-64z66y864an7j6l7j2eioyeoo2dne2vncdsnbtsnka">동물농장을 선택한 이유</h2>
<p>읽고자 했으나 지금까지 미뤄왔던 책 중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 농장] 은 인간의 탐욕이 정치에 어떻게 드러나고, 그것이 어떻게 사회에 퍼져나가는지 우화로 풀어낸 소설이다.</p>
<p>필자는 인간의 잠재력은 높게 평가하나, 그 원동력인 [욕망] 은 어느 수준을 넘으면 이를 뒤로 잡아당기는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파괴적인 힘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좋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무시할 수 없는 유혹을 지녔기에 사회는 욕망을 바탕으로 발전한다고 필자는 생각해왔다.</p>
<p>그러나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추론의 단계는 오직 필자가 생각으로만 해본 가상의 사회였으며, 이 과정에서 필자의 누락된 생각이나 예외 사항을 반론해주거나 검증해줄만 한 소스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 필자는 꾸준하게 가지고 있던 의문을 해결하기 좋은 계기라 생각하여 필자가 알고 있는 책 중 비슷한 범주 내에 있는 소설인 동물 농장을 골라 읽어보게 되었다.</p>
<h2 id="heading-67cy656a7j2yioyepeydhcdsnb3snlzrqba">반란의 장을 읽으며</h2>
<p>필자는 동물 농장의 극초반 부분을 읽으며 이 책이 묘사하는 배경 [동물 농장] 이 처음 설립될 때의 감각을 잊을 수 없다. 1900년대 초중반의 파시즘과 전체주의, 그리고 2020년도부터 시작되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가 너무나도 명료하게 겹쳐보였기 때문이다.</p>
<p>소설의 중반부가 되어서야 작가 조지 오웰의 비유하고자 하는 대상이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필자는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물 농장] 이 세계 2차 대전 당시 추축국을 비유하는 줄로 알았다. 반란이 시작되고 나서의 전체주의적 사상과 수상은 항상 옳다는 맹목적 믿음, 그 믿음이 깨지지 않도록 계속되는 선동과 세뇌, 그리고 국가의 구성원 모두가 지도자의 목표를 위해 동원되는 것 등, 매우 닮은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다.</p>
<p>하지만 지도층이 타락하고 소위 말하는 [하급 계층] 과 분리되며 그들에게 적용되는 시스템 위에 군림하고 있는 지도층에 대한 묘사는 입달린 사람이라면 모두 이 비유는 몰락 직전 소비에트 연방을 가리킨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을 약간 다른 시각으로 보았다. 이 비유는 소비에트 연방 뿐만이 아니라 [잘못된 이념] 이 정치에 녹아들면 어떻게 되는지 묘사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며 읽어나갔다.</p>
<h2 id="heading-7j6l7jwf7j2yioyepeydhcdsnb3snlzrqba">장악의 장을 읽으며</h2>
<p>소설 동물 농장에서 돼지들이 [동물 농장] 을 장악해 나가는 과정이 추축국 중 가장 유명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이하 나치) 이 독일을 장악해 나가는 과정과 매우 비슷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아리아인의 땅을 넓히고자 [레벤스라움] 정책을 시행했고, 필연적으로 따르는 전쟁과 수많은 공사에 끝없는 인원을 동원했다 (소설에서의 나폴레옹,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 뿐만 아니라 몇가지의 인종을 주 적으로 돌림으로서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고 합법화 함으로서 끝없는 분노를 자극해 수장 본인의 영토 확장 욕구를 채우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았다 (소설에서의 스노볼, 나치의 유대인).</p>
<p>그리고 이를 독일 국민에게 퍼뜨려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언변이 뛰어난 연설가를 두어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막았다 (소설에서의 스퀼러, 나치의 괴벨스). 또한 만약 이에 반대하는 이가 있다면 이를 잡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특별 군대 (소설에서의 개, 나치의 SS 경찰) 와 여론이 일어나는 것을 제어하고 방해하는 기관 (소설에서의 양떼, 나치의 히틀러유겐트) 을 준비하여 일반 국민들이 이에 반항하거나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하였다.</p>
<p>필자는 소설 동물 농장에서 나폴레옹이 [동물 농장] 을 장악해 나가는 과정을 읽으며 여론 조작은 장악에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국가에서 정치권에 큰 일이 벌어질때는 항상 여론 조작이 발생했고,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p>
<h2 id="heading-7yoa65297j2yioyepeydhcdsnb3snlzrqba">타락의 장을 읽으며</h2>
<p>소설에서의 돼지, 즉 지도층은 결국 타락해버렸다. 자신들이 가진 문제를 남탓으로 돌리고, 문제가 생기면 덤태기와 프레임을 씌워 사형이나 추방을 시켰다. 쓸모를 다한 구성원은 도살장으로 넘겨 뒷돈을 받은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점부터 작가 조지 오웰의 비유가 나치보다 소비에트 연방에 가깝다는 점이 드러난다.</p>
<p>소비에트 연방은 막바지에 이르렀을때 지나칠 정도의 내부 부패가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는 건재하다고 선전했고, 사고는 항상 은폐되었다. 뒷돈과 서류조작 또한 난무했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그에 비해 부패가 적은 편에 속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자신들이 목표를 달성하기 전, 안정적인 위치에 도달하기 전에 패망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나치 독일이 더이상의 확장을 멈추고 내부를 다졌다면, 매우 빠른 속도로 부패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p>
<h2 id="heading-100">100년만에 반복되는 현상</h2>
<p>2025년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파시즘에 가까운 선동이 난무한다. 때문에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화는 더욱 더 심해지고 있고,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알면 서로를 적대시 인식하는 단계까지 와버렸다. 필자가 태어나기 전에 있던 정치 토론에서는 ‘어째서 당신이 틀렸고 나는 옳았나’ 혹은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은 이것 보다는 이것이 낫다’ 와 같이 격식이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지금 보는 토론은 ‘아무튼 당신은 틀렸고 나는 무조건 옳다’ 라거나, ‘나는 선이고 당신은 악이다’ 와 같이 칼같이 이분법적이고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토론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어버렸다.</p>
<p>소설 동물 농장에서는 양떼들이 외치는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와 같은 구호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소설의 초반에서 두 발이 악한 이유는 두 손이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르기 때문이라고 근거를 든다. 하지만 양떼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직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를 외워버린다. 그렇기에 처음 들었던 근거인 ‘두 손이 나쁜 일을 저지르므로 두 발은 나쁘다’ 를 정면으로 반발하는 ‘네 발은 좋고 적으면 더 좋다’ 라는 구호로 변질되어 버린다. 이는 마치 법률에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과 같은 법이 악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비밀에 부쳐야 할 사실 (예: 성폭행 피해) 을 동의 없이 공개해버리는 경우를 막고자 만들어진 법을, 단지 자신의 치부를 들춰 기분이 나쁘다고 고소하는 용도로 쓰는 경우가 상당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실적시 명예훼손] 을 악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 소설에서의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의 목적은 동물에게 있어 인간의 부패와 타락을 일삼는 손을 배척하기 위함이였다. 그러나 이 의미는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변질되어 돼지들이 두 다리로 걷게 하는데 오히려 도움을 주었다.</p>
<p>정치적 양극화, 변질된 본질에 더불어, 혐오와 적대, 갈등과 불안의 조장 또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정치와 언론은 맥락을 제외하거나 짜깁기 한 통계 데이터를 근거로 들며 반대편을 몹쓸 사람이나 악마로 만들어버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귀를 닫아버리게 한다. 사람들이 귀를 닫으면 닫을수록 기득권은 사람들을 제어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p>
<h2 id="heading-66ei7lmy66mw">마치며</h2>
<p>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이후, 인류는 몇몇 국지전을 제외하면 최대로 평화로운 시대를 보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지 100년이 조금 넘은 지금, 전세계적 국가간 이해관계 충돌, 마찰, 갈등은 계속해서 부풀어졌다.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금, 필자의 생각에는 소설 동물 농장이 과거를 동물에 빗대어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거울과도 같다고 생각한다.</p>
<p>어떤 일이 일어날때는 항상 전조 증상이 있다. 그리고 그 전조 증상에는 항상 패턴이 있다.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사람 사이에서도. 소설 [재벌집 막내아들] 에서 주인공의 할아버지 진양철은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도준아, 이 할애비가 하는 말을 지금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나중에 필요할때 기억해 낼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 작가 조지 오웰 또한 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건네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당장 이 내용을 모두 기억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기득권의 누군가가 의심될 때, 누군가가 지나치게 갈등을 조장하는 것 같을 때, 마치 소설에 나오는 돼지와도 같은 행동을 보일 때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살피며 나에게 그리고 공동체에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p>
<p>—</p>
<p>2025.10.10: 오탈자 수정 (대젠 → 대전)</p>
]]></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언어와 의미의 관계]]></title><description><![CDATA[인간의 문명은 줄곧 소통을 바탕으로 발전해왔다. 소통의 규격화는 언어로 발전하였고, 언어는 곧 인간의 문명의 시작과 같았다. 석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까지, 인간이 소통을 하지 못했다면 현대 문명까지 다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개개인이 한 분야에 특화되어, 어떨때는 미친것처럼 몰두하여 무언가를 성공시켜내고, 이런 개개인이 서로 소통하고 상호보완을 해내어 이를 실생활에 응용해내며 결국에는 인류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지식은...]]></description><link>https://thoughts.lks410.me/7ja47ja07jmaioydmouvuoydmcdqtidqs4q</link><guid isPermaLink="true">https://thoughts.lks410.me/7ja47ja07jmaioydmouvuoydmcdqtidqs4q</guid><dc:creator><![CDATA[LKS410]]></dc:creator><pubDate>Mon, 05 May 2025 01:00:40 GMT</pubDate><enclosure url="https://cdn.hashnode.com/res/hashnode/image/upload/v1745085711708/2807038f-e321-4433-b676-3d9c5df45ec1.png" length="0" type="image/jpeg"/><content:encoded><![CDATA[<p>인간의 문명은 줄곧 소통을 바탕으로 발전해왔다. 소통의 규격화는 언어로 발전하였고, 언어는 곧 인간의 문명의 시작과 같았다. 석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까지, 인간이 소통을 하지 못했다면 현대 문명까지 다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개개인이 한 분야에 특화되어, 어떨때는 미친것처럼 몰두하여 무언가를 성공시켜내고, 이런 개개인이 서로 소통하고 상호보완을 해내어 이를 실생활에 응용해내며 결국에는 인류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지식은 하지 못하면 구전으로 전수되거나 활자로 기록하며 더욱 발전해 나갔다.</p>
<p>"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이 남긴 이 말은 활자와 기록이, 더 나아가 소통과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의미 없는 문장이였을 것이다. 인류는 언어를 가지고 서로 소통해왔고 언어는 문명의 기초이자 시작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문장과 언어를 "이해" 한다고 생각한다. 문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이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
<p>하지만 지난 한두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거대 언어모델은 과연 언어와 문장이 정말로 의미를 담고, 이것을 이해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든다.</p>
<h2 id="heading-7ja47ja064quioq3ucdsnpdssrtrozwg7j2y6647j246rca">언어는 그 자체로 의미인가</h2>
<p>필자는 언어가 그 자체로 의미를 담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언어가 그 자체로 의미를 담는다면, 세상의 모든 언어는 거의 비슷하게 읽고, 쓰고, 발음하여야 한다. 마치 그림처럼 말이다.</p>
<p>그림은 어떠한 형상을 본떴기 때문에 그림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세계 각지에 단순한 그림을 그릴줄 아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코끼리」 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드는 이미지를 그대로 그려보라고 이야기 해보자. 그 그림의 화풍, 디테일, 시점은 약간씩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는 비슷한 형상을 띠게 될 것이다.</p>
<p>코끼리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흔히 접하는 아이콘 혹은 픽토그램 또한 마찬가지다. 그 자체로 어떤 형상을 의미한다. 올림픽에서 픽토그램은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어떤 스포츠인지 그 즉시 알 수 있도록 그려진다. 언어를 모르는 사람도 픽토그램을 보고 올림픽을 본다면 ‘아 이게 같은 스포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p>
<p>그렇다면 언어는 어떠한가? 우리는 파생된 언어 혹은 단어끼리는 비슷한 발음을 띠지만 완전히 다른 지역과는 완전히 다른 발음과 의미를 지니게 된다. 즉, 언어는 그 자체로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p>
<h2 id="heading-7ja47ja064quioychoy5mcdsojxrs7tsmyag6rcz64uk">언어는 위치 정보와 같다</h2>
<p>그렇다면 언어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렇게 폭넓게 쓰일까? 필자는 언어가 의미의 위치 정보와 같다고 생각한다. 추상적이든 현실적이든 관계 없이 어떠한 개념을 가리키는 주소지처럼 말이다.</p>
<p>언어로 이루어진 문장은 각자의 뇌 속에 있는 의미의 위치를 찾고 배치하여 새로운 의미를 조합하는데 사용하는 일련의 명령어와 같다. 또 다시 「코끼리」 를 이용하여 예시를 들어 보도록 하겠다. 화살표가 향하는 방향이 컴퓨터의 한 폴더로 들어간다고 생각했을 때, 「코끼리」 라는 개념의 위치를 생각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p>
<p>[ 현실 → 사물 → 생명체 → 동물 → 큰 동물 → 코끼리 ]</p>
<p>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위치할 수 있다:</p>
<p>[ 현실 → 사물 → 생명체 → 동물 → 초식 동물 → 초원에 사는 초식 동물 → 대체로 회색인 동물 → 코끼리 ]</p>
<p>이렇게 한 개념에 대해서 제각기 다른 분류가 생길 수 있다. 다른 언어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언어와 무관하게 코끼리, elephant, 象, elephantus, 등등 코끼리를 지칭하는 단어 그 자체가 가리키는 형상이자 의미는 한 사람의 머릿 속에서 정확히 같다. 즉 현실에서 도로명 주소와 번지수 주소처럼 위치를 표기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으나 그 위치가 가르키는 진짜 위치는 완전히 동일한 것과 마찬가지다.</p>
<h2 id="heading-66y47j6l7j2aiouwqe2wpsdsojxrs7tsmyag6rcz64uk">문장은 방향 정보와 같다</h2>
<p>단어가 어떤 의미를 가르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면, 문장은 어떻게 풀이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필자는 문장이 방향 정보를 담고있다고 생각한다. 이 방향의 정보는 두가지 같은 위치를 가지고 있어도 서로 엮었을 때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게 한다.</p>
<p>예를 들어 국가 A 와 B 가 있다고 가정하자. 국가 A 는 큰 내전을 벌이는 중이고 국가 B 는 평화로운 상태다. 만약 누군가 국가 A 에서 국가 B 로 향하는 방향을 잡았다면, 이 행위의 의미는 도망 혹은 도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대로 국가 B 에서 국가 A 로 방향이 잡힌다면 이 행위의 의미는 도움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정확히 같은 두 위치를 서로 방향을 바꾼다면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p>
<p>즉, 문장이 정의하는 단어의 순서는 의미의 흐름의 방향이고, 이것이 완전한 형태의 의미를 띠게 된다. 언어에 붙어있는 문법은 문장이 정의하는 단어의 순서를 정의하는 규칙이기에, 그것은 언어마다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가지게 될것이다.</p>
<h2 id="heading-6rkw66ggoidqsjnsnyag7jye7lmy66w8ioqwgoumro2cqoulpouptcdqt7jqsopsnyag6re4ioyekoyytouhncdsnzjrr7jrpbwg6rca7kee64uk">결론: 같은 위치를 가리킨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h2>
<p>혹자는 LLM (Large Language Model, 대규모 언어모델) 이 만들어내는 문장은 단지 다음 토큰 (단어 혹은 단어의 일부) 을 추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 문장이 아니고 특별한 힘이 있지도 않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에 이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p>
<p>LLM 이 생성해 내는 문장은 의미의 클러스터가 담긴 벡터 데이터베이스에서 단어를 골라내고 그 단어를 바탕으로 다음에 올 확률 높은 단어중 한개를 무작위로 선택해 내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생성된 문장은 당연히 사람이 만들어내는 문장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을 가질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LLM 이 만들어낸 문장을 읽었을 때 위화감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LLM 이 만들어내는 문장은 언어의 문법이 맞을 확률이 매우 매우 높고 이에 따라 단어의 배치 또한 올바르게 될 것이다.</p>
<p>위에서 서술했든 단어는 의미의 위치 정보이고 문장은 이를 엮어내어 온전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즉, LLM 이 문법의 규칙을 따르고 의미에 알맞은 올바른 단어가 벡터 데이터베이스에서 불러와 졌을때 LLM 이 만들어내는 문장은 온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다만, LLM 의 설계적 한계인 [다음 토큰 추론] 방식은 헛소리이자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장이 실용성이 없을지언정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p>
<p>예를 들어 소설을 작성한다고 생각해보자. 소설은 창작물이며 이는 대체로 역사같이 진실 그 자체를 중요시 여기는 것이 아니다. 즉, 사실과 다르다는 맥락에서 거짓말이자 헛소리일 수 있다. 이는 LLM 이 만들어내는 거짓스런 문장이 어떤 맥락에선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러한 문장은 소설과 같은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맥락에선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LLM 이 만들어내는 문장은 어떤 맥락에 따라 다르겠지만, 의미가 없는 문장은 절대 아니다.</p>
]]></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신뢰 - 독심의 불가능은 축복인가, 저주인가?]]></title><description><![CDATA[독심의 불가능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사람은 모두가 다르다. 성장해 온 배경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철학도, 그리고 원하는 것도. 하지만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이는 축복이자 저주인 양날의 검이다. 하지만 결국 이는 문명 발전의 관점에서 저주로 기울것이고, 인류의 번성에 있어서는 축복이라 생각한다.
인류의 쇠락
모든 인간은 불신의 대상으로 출발하며, 타인을 구분짓고 배척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스스로 살 수 없기 때문...]]></description><link>https://thoughts.lks410.me/7iug66kwic0g64f7ius7j2yiou2ioqwgoukpeydgcdstpxrs7xsnbjqsiasioyggoyjvoyduoqwgd8</link><guid isPermaLink="true">https://thoughts.lks410.me/7iug66kwic0g64f7ius7j2yiou2ioqwgoukpeydgcdstpxrs7xsnbjqsiasioyggoyjvoyduoqwgd8</guid><dc:creator><![CDATA[LKS410]]></dc:creator><pubDate>Mon, 28 Apr 2025 01:00:24 GMT</pubDate><enclosure url="https://cdn.hashnode.com/res/hashnode/image/upload/v1745084239362/37c2dd79-245f-4603-94ec-48ec372e243c.png" length="0" type="image/jpeg"/><content:encoded><![CDATA[<h2 id="heading-64f7ius7j2yiou2ioqwgoukpeydgcdstpxrs7xsnbjqsiasioyggoyjvoyduoqwgd8">독심의 불가능은 축복인가, 저주인가?</h2>
<p>사람은 모두가 다르다. 성장해 온 배경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철학도, 그리고 원하는 것도. 하지만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이는 축복이자 저주인 양날의 검이다. 하지만 결국 이는 문명 발전의 관점에서 저주로 기울것이고, 인류의 번성에 있어서는 축복이라 생각한다.</p>
<h2 id="heading-7j2466wy7j2yioyhooudvq">인류의 쇠락</h2>
<p>모든 인간은 불신의 대상으로 출발하며, 타인을 구분짓고 배척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스스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불신을 하면서도 강제적으로 타인과 섞여서 살아야 한다.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이 사회는 불완전하며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내가 한다고 너가 한다는 보장이 어딨지?” “네가 안한다 해놓고 뒤에서 몰래 하는거 아니야?” 등등,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의심은 사건에 따라 사회의 기반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사회의 안정성은 매우 나쁘다.</p>
<h2 id="heading-1">개인의 예 1</h2>
<p>나와 가까운 두 친구가 있다고 가정하고, 각각 A, B 로 칭하며, 본인을 C 로 칭하자. 친구 A 는 솔직하며 자신의 내면을 잘 털어놓는 친구다. 친구 B 는 자신의 이야기를 숨기며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때, 사람들은 친구 A 를 더 친하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p>
<p>한 연구에 따르면, 실험 감독관의 유도된 질문 아래, 남녀 한 쌍이 연인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던 그룹은 서로의 약점과 내면을 일찍이 공유한 그룹이였다. 반대로 말해 본인의 취약점과 내면을 드러내지 않고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한 사람에 비해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5년, 10년, 어쩌면 20년동안 같이 지낸 친구 A 씨와 B 씨 중 서로에 대해 더 잘 아는 친구는 당연 친구 A 씨일 것이다.</p>
<p>하지만 군자보구 십년불만 (君子報仇 十年不晩) (군자의 복수는 십년도 늦지 않는다) 이란 말이 있듯, C 씨가 수년간 같이 지내온 A 씨는 C 에게 드러내는척 하며 자신의 진짜 비밀과 친해진 목적을 숨길 수도 있었다. C 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A 씨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었고 그에 따라 믿을만 하다고 여겼을 수 있다.</p>
<p>하지만 A 씨의 확실한 내면을 아는 것은 아니다. 입은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수년, 어쩌면 수십년간 같이해 온 친구도 언젠가 나를 향해 칼을 드러낼 수 있다. 정말 칼이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p>
<h2 id="heading-2">개인의 예 2</h2>
<p>사람에겐 눈치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것의 정확도는 장담할 수 없다. 누군가는 뛰어난 눈치가 있어 정말 높은 정확도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늘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p>
<p>눈치란 기본적으로 빅데이터와 같은데, 이 빅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서 상황의 분위기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때때로 상황과 분위기는 묘하게 실제와 어긋나있을 수 있다. 웃으면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하는데 각자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들어간다거나, 정말로 나쁜 분위기인줄 알았는데 제대로 일이 풀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p>
<p>또한, 감각도 마찬가지로 속거나 속이기 굉장히 쉬운 축에 속한다. 확실한 사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착시나 착청현상등이 있다. 즉, 눈치 혹은 감각은 생각보다 그다지 신뢰할만한 정보가 아니다.</p>
<p>가장 믿을 수 있는건 상황, 논리, 숫자 등 명확하게 제시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말은 거짓말이 가능하고, 논리는 허점을 흐리게 할 수 있으며, 숫자는 깨끗한 조작이 가능하다. 즉 개인이 받아들이는 정보는 상당히 믿을 수 없는게 많다.</p>
<h2 id="heading-7kgw7keb7j2yioyyia">조직의 예</h2>
<p>조직의 경우는 더욱이 신뢰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한 대형 빌딩을 짓는데 두 건설사가 입찰을 시도했다. 건설사 A 는 건설 비용에 100억을, 건설사 B 는 150억을 입찰했다. 건설사 A B 각각의 계획서에는 장단점이 있었다. A 사는 비교적 저렴한 재료와 오래되었지만 그만큼 안정성을 입증한 공법을 사용한 반면, 건설사 B 는 값비싼 자재로 최대한 보수적인 설계와 탄탄한 최신형 공법을 사용한다.</p>
<p>이 경우, 건물의 용도에 따라 건설사는 A가 될 수도, B가 될 수도 있지만 시장논리에 따라 A사가 입찰에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만약 A 사가 입찰가의 절반을 깎아 안그래도 값싼 재료를 더 싸게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비리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는가? 확실한 감사를 하지 않고선 심증 뿐이다. 조직은 공적이여야 하고, 소식의 하나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개인 대 개인처럼 유죄추정을 할 순 없다. 더군다나 조직이 마음먹고 조작을 한다면, 수많은 진실을 엮어 하나의 거짓을 만들어내기에 이를 역으로 알아내는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p>
<p>즉, 아무리 공적이고 수많은 정교한 시스템이 떠받치고 있다 한들, 사람이 그 주역인 이상 신뢰를 하기까지에는 매우 깊은 경계심과 검토가 필요하다. 조직 대 개인이나 조직 대 조직 모두 시작은 불신으로 출발해야 한다. 개인보다도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이 조직을 상대하는 것이다. 조직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상정하며 만들어낸 거짓을 진짜인 양 내세울 능력이 있다.</p>
<h2 id="heading-64f7ius7j2yiou2ioqwgoukpeydgcdrrljrqoug67cc7kce7j2yioq0goygkoyxkoyencdsoidso7zsnbtri6q">독심의 불가능은 문명 발전의 관점에서 저주이다</h2>
<p>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건 저주이다. 조직 속에서 개인은 이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되뇌이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필시 당한다. 그게 나와 먼 사람이든, 비즈니스적 관계인 사람이든, 아니면 정말로 가까운 사람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대가는 쉬이 재단할 수 없다. 정말 미미할 수 있고, 어쩌면 사회적, 물리적 죽음에 다다르게 할 수 있다.</p>
<p>결국 이를 서로 대응하며 자신을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타인과의 충돌이 발생할 것이고, 이는 문명의 발전을 늦추고 어쩌면 후퇴 시킬 수 있다.</p>
<h2 id="heading-64f7ius7j2yiou2ioqwgoukpeydgcdsnbjrpzgg7kg07ian7j2yioq0goygkoyxkoyencdstpxrs7xsnbtri6q">독심의 불가능은 인류 존속의 관점에서 축복이다</h2>
<p>그러나 관점에 따라 생각의 결이 바뀔 수 있다. 나 개인에게 있어 독심의 불가능은 양날의 검과 같다. 인간은 누군가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전제라면, 상대방 또한 나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나만의 정보, 남이 알았을 때 부끄러울 정보와 기억등이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개인에게 있어 매우 큰 축복이다.</p>
<p>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또한 독심의 불가능은 축복으로 확장될 수 있다. 어떠한 공동체의 지도자를 선출한다고 가정하고,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보았을때 우러러 볼만 한 대단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을 하자.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모두가 우러러 본다 한 들, 이 사람 또한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 많은 실패와 어쩌면 그릇된 판단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을 수 있고, 과거의 부끄러운 사고관과 일련의 사건이 있었을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내용이 구성원들 모두가 알게 된다면, 그 위에 세워진 더 큰 이익을 가리게 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p>
<p>가정을 이루는데 있어서도 강한 이점이 있다. 흔히 말하는 「콩깍지」 가 그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선의의 거짓말」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의 감정이 완전히 메말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좋은 거짓말은 누군가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가정을 꾸리고 자손이 대를 이어가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를 더욱이 확장해서 생각한다면 독심의 불가능은 인류 번성에 생각보다 큰 기여를 할 것이다.</p>
<h3 id="heading-6rkw66gg">결론</h3>
<p>결국 독심의 불가능은 인류의 문명 발전에 있어 안좋은 점을 가질 수 있으나, 인류 존속에 있어서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둘 중 어디에 무게를 실어야 하고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할까.</p>
<p>시스템은 그 기틀이 얼마나 유연하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무한한 열린 가능성을 제공하기도, 꽉 막혀 어떠한 가능성도 차단하기도 한다. 즉 우리는 투명한 보고 체계를 바탕으로 상호 견제를 확립하는 것이 매우 매우 중요하다. 그 중 특히 투명한 보고 체계는 매우 확실히 이루어져야 한다. 문명의 차가운 특성상 감정이 배제된 투명한 보고 체계는 더 큰 이익을 향하는데 노이즈를 크게 줄일 것이다. 이러한 대안을 통해 우리는 독심불가의 저주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p>
<p>또한 우리는 독심불가의 저주를 거꾸로 이용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투명한 보고 체계를 확립할 때, 그 기반을 불신으로 두고 설계하게 된다면 논리적으로 그 불신을 무너트릴 수 있게 된다. 결국 이는 더욱 투명하고 탄탄한 보고 체계를 완성시키며, 역설적으로 불신을 신뢰로 바꿀 수 있게 된다.</p>
<p>따라서 사람들은 생각을 읽지 못하는 것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이용해야 한다. 불신을 토대로 신뢰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하여야 한다. 이는 인류의 존속이나 문명의 발전과 관계가 없다. 나쁜 것을 이용하여 좋은 쪽으로 활용하고, 좋은 것은 더 좋게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합리적인 선택이자 방향이다.</p>
]]></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행동의 결정과 유도에 관한 사고실험]]></title><description><![CDATA[서론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거나 충족시키기 위해 신체를 운동하는 것이다. 사람은 행동을 하기 위해 조건의 만족을 판단하며 이는 대체로 의식과 사고의 영역이다. 의식과 사고는 기억의 연속성을 통해 결정되며, 따라서 기억의 변동은 곧 행동 결정의 변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사람의 기억이 크게 소실되었을 때, 소실되기 전 환경의 구성이나 설정으로 특정한 행동을 유도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의식과 사고가 ...]]></description><link>https://thoughts.lks410.me/7zaj64z7j2yioqysoygleqzvcdsnkdrj4tsl5ag6rsa7zwcioycroqzooylpo2xma</link><guid isPermaLink="true">https://thoughts.lks410.me/7zaj64z7j2yioqysoygleqzvcdsnkdrj4tsl5ag6rsa7zwcioycroqzooylpo2xma</guid><dc:creator><![CDATA[LKS410]]></dc:creator><pubDate>Wed, 23 Apr 2025 04:00:55 GMT</pubDate><enclosure url="https://cdn.hashnode.com/res/hashnode/image/upload/v1745085135911/71f728a6-6747-4127-ac74-b124932ae339.png" length="0" type="image/jpeg"/><content:encoded><![CDATA[<h2 id="heading-kirshjzroaaqkg"><strong>서론</strong></h2>
<p>사람이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거나 충족시키기 위해 신체를 운동하는 것이다. 사람은 행동을 하기 위해 조건의 만족을 판단하며 이는 대체로 의식과 사고의 영역이다. 의식과 사고는 기억의 연속성을 통해 결정되며, 따라서 기억의 변동은 곧 행동 결정의 변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사람의 기억이 크게 소실되었을 때, 소실되기 전 환경의 구성이나 설정으로 특정한 행동을 유도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의식과 사고가 크게 결여된 상태로 감각만이 존재하는 상태여도 특정한 행동을 유도할 수 있을까? 이를 답하기 위해 사고 실험을 고안했으며, 이 사고실험과 일련의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궁극적으로 답하고자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p>
<p>| 내가 과거에 했던 선택의 순간이 다시 오고,<br />| 그 순간과 현재까지의 기억을 잃은 상태라면,<br />| 나는 동일한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p>
<p>이는 “현재의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나온 질문이지만 이번 사고 실험에서의 역할은 사람이 추가적인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 본인이 하는 최선의 행동이 유도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기반 사고다.</p>
<h3 id="heading-kirsoitsojwqkg"><strong>전제</strong></h3>
<p>이 글에서 서술하는 사고실험은 단순히 사고실험이며, 변수 커버리지가 다소 넓지 않으므로 결과는 현실과 크게 다를 수 있다.</p>
<h3 id="heading-kirsgqzqs6ag7iuk7zeyio2zmoqyvsdshktsojuqkg"><strong>사고 실험 환경 설정</strong></h3>
<p>이 글에서는 크게 두 가지 경우에 대한 사고 실험을 할 것이며, 첫째는 의식이 남아있는 상태로 기억만 유실된 상태(완전한 기억 상실)에서 행동을 유도하는 것, 둘째는 의식이 남아있지 않으며 외부 자극으로만 움직이는 상태이다. 기억상실의 실험을 실험 A, 무의식 상태의 실험을 실험 B로 칭하고, 두 실험은 모두 피실험자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환경을 구성하는 것이다.</p>
<p>실험 A의 기억 상실 중 보존되는 기억의 여부는 다음과 같다:</p>
<ol>
<li><p>언어 능력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p>
</li>
<li><p>운동 능력 (원하는 부위의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이기)</p>
</li>
<li><p>본인의 개인정보 (이름과 나이만)</p>
</li>
</ol>
<p>실험 B의 제약 사항은 다음과 같다:</p>
<ol>
<li><p>오감은 유지되지만 오감에 대한 복잡한 해석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촉각의 경우 뜨겁다, 차갑다, 아프다, 등의 자극만 인식하며 촉각을 통한 물체를 추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각은 눈부시다, 밝다, 어둡다 정도만 판단할 수 있다.</p>
</li>
<li><p>높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예: 달리기, 매달리기, 수영하기 등</p>
</li>
<li><p>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없다.</p>
</li>
</ol>
<p>실험 A의 경우, 의식이 존재하므로 기억 상실 혹은 치매와 비슷한 결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실험 B보다 피실험자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행동 유도가 비교적 단순할 수 있다. </p>
<p>반면, 실험 B의 경우, 환경 구성에 큰 공을 들여야 하며 상당 부분의 정보가 환경에 기록되어야 한다.</p>
<p><strong>이 사고 실험(A, B 모두 포함)은 일부 비인도적일 수 있으나 단순 사고 실험이므로 이를 감안한다. 시나리오로 지정되는 병 혹은 증상은 비하의 의도를 포함한 암시적 의도가 일절 없으며 오직 유사한 경우로 예를 들기 위한 목적이다.</strong></p>
<h2 id="heading-a"><strong>실험 A</strong></h2>
<p>실험 A에서 피실험자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p>
<p>| 스스로가 특정 장소로 이동하며 해당 장소에서<br />| 의도된 방식으로 장소의 환경을 설정한다</p>
<p>이 실험의 적절한 시나리오로는 치매, 섬망 등 스스로를 제어하기 어려운 상태를 가진 사람이 정상 상태가 될 때까지 가택 내부의 격리 시설로 유도되고 정상 상태가 되었을 경우 격리 상태가 해제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되는 인프라는 모두 가상으로 설정되며 해당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비용 또한 무한하며 오류 없이 완전무결하다고 가정한다.</p>
<h3 id="heading-kirsi6ttl5gg7kgw6rg0ioq1royessoq"><strong>실험 조건 구성</strong></h3>
<ul>
<li><p>피실험자는 손목에 착용할 수 있는 스마트기기를 착용한다 (이하 통칭 단말기). 이 단말기는 착용자의 기억 상실 여부를 알 수 있다. 착용 해제는 불가능하다.</p>
</li>
<li><p>단말기와 실시간으로 통신 되는 문 (혹은 창문) 여닫이 및 잠금장치가 구성된 방</p>
</li>
<li><p>피실험자는 실험 시작 시 공간의 제약이 없는 상태로 시작한다. 실외에서 시작하거나 실내에서 시작할 수 있다.</p>
</li>
</ul>
<h3 id="heading-1"><strong>1단계: 단말기 강제하기</strong></h3>
<p>단말기는 피실험자가 기억상실 상태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한 용도이므로 착용이 해제되어선 안 되며 착용 해제를 시도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면 안 된다. 따라서, 피실험자가 기억상실 상태에 빠지고 착용된 단말기가 불편하여 이를 벗으려 노력하더라도, 단말기는 착용 해제될 수 없으며 해제를 시도할 시 자극을 주도록 한다. 피실험자는 통증으로 인해 단말기를 해제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더 이상 단말기 해제를 시도하지 않는다.</p>
<h3 id="heading-2"><strong>2단계: 행동을 유도하기</strong></h3>
<p>기억상실이 왔을 경우, 피실험자는 주변 상황을 인지한다. 운동 능력과 언어능력, 기본적인 개인정보에 대한 기억이 유지된 상태인 피실험자는 본인과 관련된 정보일 경우 이를 더 쉽게, 잘 받아들일 경향이 높다. 이것을 이용하여, 주변에 짧은 메모와 같은 단순한 구성요소를 적절하게 배치한다. 예시는 다음과 같다:</p>
<p>2-1. 주머니에 무거운 노트를 넣어두고, 노트 제목에 “&lt;피험자 이름&gt;이 기억이 나지 않을 때”와 같이 현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메모를 넣어둔다. 피실험자는 바지 주머니가 무거워 해당 노트를 꺼내 볼 것이고, 현재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이를 펼쳐 읽어볼 것이다.</p>
<p>2-2. 해당 노트는 피실험자 본인이 쓴 듯하며 강력한 어투로 경고성을 띠는 메시지와 지금 당장 이루어야 하는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었을 때 생기는 이점 등을 작성하여 피실험자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이때, 피실험자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피실험자의 성격과 맞지 않는 동기 부여를 작성하였을 시, 행동이 유도되지 않을 수 있다.</p>
<p>2-3. 주변 환경에 피실험자가 친숙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안내 표지판을 설치한다. 표지판에는 피실험자가 이동해야 하는 방향과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주방으로 가는 길”, “격리실로 이동” 등의 명확한 지시를 포함시킨다. 이는 피실험자가 목표 장소로 이동하는 데 도움이 된다.</p>
<h3 id="heading-3"><strong>3단계: 환경 설정 유도하기</strong></h3>
<p>피실험자가 특정 장소에 도착했을 때, 해당 장소의 환경을 적절히 설정하도록 유도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p>
<p>3-1. 장소 내부에 피실험자가 따라야 할 구체적인 지침을 포함한 메모를 배치한다. 메모에는 “여기서 해야 할 일: 1. 창문을 닫는다. 2. 불을 켠다. 3. 테이블 위의 버튼을 누른다.”와 같이 단계별로 수행할 작업을 상세히 설명한다.</p>
<p>3-2. 피실험자가 지침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적 및 청각적 도움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지침이 쓰인 메모 옆에 해당 작업을 수행하는 그림이나 사진을 붙이거나, 지침을 음성으로 반복해서 들려준다.</p>
<p>3-3. 피실험자가 지침을 정확히 따를 경우 보상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보상은 피실험자가 좋아하는 간식, 음악, 혹은 휴식 시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피실험자는 지침을 따르는 데 동기 부여를 받을 수 있다.</p>
<h3 id="heading-kirqsrdroaaqkg"><strong>결론</strong></h3>
<p>이 실험은 피실험자의 기억 상실 상태에서도 특정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실험 결과에 따라, 기억 상실 상태에서도 환경과 설정을 통해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는 치매, 섬망 등 다양한 상태의 환자들을 관리하는 데 유용할 수 있으며, 향후 관련 연구와 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p>
<h3 id="heading-kirtlzzqs4qg67cpioqzoougpcdsgqztla0qkg"><strong>한계 및 고려 사항</strong></h3>
<p>이 실험은 가상 환경과 무한한 자원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여러 한계와 윤리적 고려 사항이 존재한다. 이 실험은 동물을 길들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나 이는 윤리적 문제와 충돌이 발생한다. 또한, 가상 환경의 구성이 어렵다는 점과 더불어 행동 유도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p>
<h2 id="heading-b"><strong>실험 B</strong></h2>
<p>실험 B에서 피실험자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p>
<p>| 특정 주제에 대해 파편적인 정보를 가진 사람이 보았을 때<br />| 해당 주제의 파편적인 정보가 하나로 묶일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한다</p>
<p>이 피실험자의 경우는 실질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우며 가장 유사한 상태는 몽유병이다. 그러나 몽유병은 시각적 정보를 받지 않으므로 몽유병이 올바른 예시는 아니다.</p>
<p>이 실험에서 유의할 점은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없으므로 가장 기본적인 본능에 의지해야 할 수 있다.</p>
<h3 id="heading-kirsi6ttl5gg7kgw6rg0ioq1royessoq-1"><strong>실험 조건 구성</strong></h3>
<ul>
<li><p>피실험자는 반드시 실내에서 시작하며, 피실험자의 행동이 완료되기 전까지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다.</p>
</li>
<li><p>실험 공간은 완벽하게 초기 조건이 유지되며 피실험자가 가하는 변경 이외의 변동은 발생하지 않는다.</p>
</li>
<li><p>외부의 정보가 특정 매체를 통해 실험 공간 내부로 들어올 수 있다. 이때, 정보 반입과 반입 방식은 제어될 수 있다.</p>
</li>
</ul>
<h3 id="heading-kirsi5zrgpjrpqzsmkqg6rws7isxkio"><strong>시나리오 구성</strong></h3>
<ul>
<li><p>피실험자는 독립된 한 방의 여러 창문을 특정한 패턴으로 열어놓거나 닫아놓아야 한다.</p>
</li>
<li><p>이 실험에서 방의 구성요소를 변경하거나 자극을 주는 자동화 된 전자장치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환경에 의해 행동이 유도되어야 한다. 다만 환경이 변화될 수 있는 재래식 장치는 존재할 수 있으며, 도움을 줄 수 있는 단순한 수준의 전자장비는 일부 허용될 수 있다.</p>
</li>
<li><p>이 실험에서의 여닫이 창문은 총 4개이며 이는 4비트와 동일시될 수 있다. 피실험자는 해당 창문을 각각 열림(0), 닫힘(1), 닫힘(1), 열림(0) 상태(0110)에서 닫힘(1), 닫힘(1), 열림(0), 닫힘(1) 상태(1101)로 바꾸어야 한다.</p>
</li>
</ul>
<h3 id="heading-1-1"><strong>1단계: 지정된 위치로 이동</strong></h3>
<p>피실험자는 방 내부 어느 위치에든 위치할 수 있으며, 이는 실험 초기 단계의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제어가 가능한 위치로 이동될 필요가 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창문이며, 창문은 벽에 붙어 있을 것이므로, 최초에는 피실험자가 방의 중앙으로 이동되어야 하며 이동 거리는 가장 짧은 거리여야 한다. 위치 유도를 위해서는 소리나 빛을 사용할 수 있다. 우리 실험의 경우 전자장치는 활용될 수 없으니, 재래식 장치를 활용하여 소리를 통해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바닥의 두께를 방의 중심에 가까울수록 얇게 하여 압력에 따라 소리를 내는 장치가 빨라져 속도가 빨라지고, 압력이 일정 수준 이상에 달했을 시 (정 중앙에 정확히 섰을 시) 장치가 떨어지거나 중지되도록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1차 장소 유도에는 성공하였으며 이제 피실험자는 우리가 의도한 위치에 있게 되었다. 이렇게 목적을 달성하였을 경우 기본적인 보상이 이루어지면 좋다. 이는 단순한 상태에서 기본적인 단계의 학습을 유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실험 시작 시 무거운 무게추가 달려 있는 상태로 시작하고, 목적지 위치에 도착하면 무게추가 떨어지거나 해제되는 방식이 가능하다.</p>
<h3 id="heading-2-1"><strong>2단계: 창문이 달린 벽을 선형탐색</strong></h3>
<p>피실험자는 동일한 방법으로 창문이 달린 벽과 달리지 않은 벽의 구석으로 향한다. 이는 창문이 달린 벽을 한쪽 방면으로 이동하면서 창문을 순차적으로 열거나 닫게 하는 목적이다. 이동을 유도하는 방법은 1단계와 동일하며, 창문을 닫거나 열어야 하는 동기 부여는 창문이 지정된 상태가 아닐 시에 불편함을 조성하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닫혀있어야 할 창문이 열려있다면 물을 분사한다거나, 열려있어야 할 창문이 닫혀있다면 창문에 덜컹거리는 소리를 낸다든가 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p>
<h3 id="heading-kirrkzag7iuk7zey7lk07j2yioycte2vqeydhcdthrxtlzwg7j2r7jqpkio"><strong>두 실험체의 융합을 통한 응용</strong></h3>
<p>두 피실험자를 적절히 섞을 경우, 피실험자는 행동을 이해하거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대의적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정보의 파편화를 통해 전략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 상대에게 정보가 일부 누출되더라도 나머지 파편이 보완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이는 특정한 상황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p>
<h3 id="heading-kirsnbqg7iks6rog7iuk7zey7jeq7iscioywuqzooyekcdtlzjripqg6rkdkio"><strong>이 사고실험에서 얻고자 하는 것</strong></h3>
<p>다시 한번 돌아보는 이 질문에 과연 답이 되었는가?</p>
<p>| 내가 과거에 했던 선택의 순간이 다시 오고,<br />| 그 순간과 현재까지의 기억을 잃은 상태라면,<br />| 나는 동일한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p>
<p>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실험 A와 B에서 각각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빗대어 우리 생활에 적용하여 생각해 본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다.</p>
<p>| 우리는 언제나 동일한 선택을 할 것이고, 그것은 당시 최선의 선택이다.</p>
<p>각 사고실험에서 실험 B 는 본능적인 면, 즉, 지성이 없을 때 반응으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이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실험 A 는 지성이 있는 상태일 때 주어진 정보로 어떻게 행동할 건지 알아볼 수 있다. 이를 더욱 확장하여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각자의 미래를 설계하고 생각해 볼 때, 우리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그 선택은 주변의 정보를 토대로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선택은 인간 본인이 가진 사고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주변의 정보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필연적으로 정해진다고 생각하며, 만약 추가적인 미래의 정보가 없이 과거의 정확한 선택의 순간에 도달했을 때 그 선택은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p>
<p>혹자는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 한 번만 더 주변 정보를 확인했더라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과거로 돌아가면 좀 더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지만 이는 개인적으로 후회만이 존재하는 말이다. 내가 이런 결과가 올지 알고 있든 몰랐든 본인은 이미 과거에 선택을 하였다. 미래의 후회는 과거에도 추측할 수 있었고, 본인의 행동 논리는 이미 본인의 능력치와 성실성, 그리고 본능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아주 복잡한 알고리즘에 한없이 가까우므로 주어진 정보가 동일하고 상황이 동일하다면 인간은 정확히 같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본인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p>
]]></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완전무결하지 않은 악은 자멸의 길을 걷는다]]></title><description><![CDATA[인류는 지금껏 서로 공존 해오며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 중심에 있던 「탐욕」 은 인류를 지구의 동물 중 드물게 동종에 칼을 겨눌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공동 생존에 유리하지 못한 선택을 하거나 이를 부추기는 것을 「악」 으로 칭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악은 본디 공동 생존에 반하는 선택이 다수를 차지한다. 따라서 필자는 한 사람 스스로가 독립적이며 완전무결한 악이 되지 않는 이상 이...]]></description><link>https://thoughts.lks410.me/7jme7kce66y06rkw7zwy7keaioyviuydgcdslyxsnyag7j6q66m47j2yioq4uoydhcdqsbfriptri6q</link><guid isPermaLink="true">https://thoughts.lks410.me/7jme7kce66y06rkw7zwy7keaioyviuydgcdslyxsnyag7j6q66m47j2yioq4uoydhcdqsbfriptri6q</guid><dc:creator><![CDATA[LKS410]]></dc:creator><pubDate>Sat, 19 Apr 2025 16:42:19 GMT</pubDate><enclosure url="https://cdn.hashnode.com/res/hashnode/image/upload/v1745078335112/142c101b-84de-4e9e-8670-f73ba9c632d5.jpeg" length="0" type="image/jpeg"/><content:encoded><![CDATA[<p>인류는 지금껏 서로 공존 해오며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 중심에 있던 「탐욕」 은 인류를 지구의 동물 중 드물게 동종에 칼을 겨눌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공동 생존에 유리하지 못한 선택을 하거나 이를 부추기는 것을 「악」 으로 칭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악은 본디 공동 생존에 반하는 선택이 다수를 차지한다. 따라서 필자는 한 사람 스스로가 독립적이며 완전무결한 악이 되지 않는 이상 이는 반드시 자멸을 촉진하게 된다고 생각한다.</p>
<h2 id="heading-kirsnb3quldsl5ag7jwe7isckio"><strong>읽기에 앞서</strong></h2>
<p>본 글은 정해진 기준 내에서 사고한 결과에 대해 서술하며, 이는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글에서 서술할 때 사용된 근거는 대체로 연구된 근거가 아니며 오직 필자의 생각과 논리적 추론을 거쳐 나온 결론이다. 필자 또한 하나의 사람이므로 필자의 논리적 추론에는 어떤 식으로든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즉, 이 글은 절대적으로 합리적인 글이라 할 수 없으며 단지 생각의 폭과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참고 자료로서 적합할 수 있다.</p>
<h2 id="heading-kirjgizslyxjgi3snbtrnoag66y07jeh7j246rcakio"><strong>「악」이란 무엇인가</strong></h2>
<p>사람들의 사고력이 넓어지면서 선악의 구분 기준은 이해관계와 시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선」 과 악의 기준이 모호해졌다 한들, 공동체와 다수에게 나쁜 행위나 상황은 분명 존재한다. 누군가 만약 스스로의 사익(私益)만을 추구하여 이기심을 바탕으로 공동체에 불리한 상황을 촉진시킨다면, 이는 다수에 의해 악으로 규정될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악으로 규정하고 논리를 펴나갈 것이다.</p>
<p>필자는 위와 같은 표준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아래 서술한 논리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해 관계가 어떠하든, 악 혹은 이와 유사한 행위를 행한 자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결론적인 관점에선 공동체에 불이익을 야기한 행위이기 때문이다.</p>
<p>예를 들어보자.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은 본인과 가족이 배를 곯아 이를 단기적으로나마 해결하고자 빵을 훔쳤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이 빵은 저 제빵사가 돈을 벌기 위해 파는 것이고, 이를 얻으려면 정당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돈이 없으니 아사를 받아들이겠다' 라며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당장 눈 앞에 생존의 문제가 달렸는데, 도덕과 윤리가 무슨 소용인가?' 라는 의문이 들까? 나를 의지하는 나의 피붙이가 있다면 다수의 선택은 아마 후자일 것이다.</p>
<p>그렇게 본인과 본인의 가족이 굶어 죽는걸 잠시 모면하였다면, 이는 사람을 살렸으니 선 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빵을 훔쳤으니 악 이라고 봐야할까? 필자는 이를 두 경우로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정의(個人的正義) 와 공동체적 정의(共同體的正義), 흔히 「법」 (法)과 「윤리와 도덕」 이라 불리는 그것으로 나누어 생각해야 타당하다. </p>
<p>자신의 피붙이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좋아하는 정상인은 사실상 없다. 그러니 이를 살리는게 개인적 정의에는 가장 합당하다. 그러나 개인적 정의는 공동체적 정의와 동일시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법은 공동체가 분열되지 않도록 하는 합의점이자 최소한의 지켜져야 하는 선(線)이다. 이와 같은 가치가 훼손될 경우 공동체의 존속은 보장하기 어려워진다. 즉 이에 따른 처벌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위법의 정도와 동기가 이해의 범주라면 이를 참작해줄 순 있을 것이다.</p>
<p>현대 사회에서 「판례」 는 이후 재판에서 큰 참고자료로 쓰일 만큼 공동체에서 「선례」 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다. 선례는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전통」 으로 진화할 것이고, 이는 이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만약 개인적 정의와 공동체적 정의가 동일시 되거나, 개인적 정의를 완전 참작하여 공동체적 정의가 무시되어 처벌받지 않는다는 선례가 생긴다면, 이후에 발생할 유사한 사건들은 모두 이러한 선례를 들며 자신도 이러한 결과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와 도덕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둔 최소한의 합의점과 선(線)에 해당하는 법은 참작을 감안하여 변형 될지언정 반드시 집행되어야 한다.</p>
<p>따라서 본 글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악은 질서를 흩뜨리며, 사익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공동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악으로 규정하고 추후 서술을 하고자 한다. 다만, 이 경우 공동체의 특성으로 인한 부도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규칙은 악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이를 하나의 공동체 문화로 간주한다.</p>
<h2 id="heading-kirsmytsoitrrltqsrdtlzwg44cm7jwf44cn7j20656aioustoyxhyduoqwgcoq"><strong>완전무결한 「악」이란 무엇인가</strong></h2>
<p>대부분의 종교, 더 나아가 상식적인 선에서 이야기 하는 「악마」는 악의 화신이자 이를 행하는 자이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며, 경우에 따라 (그러나 대체로) 상식 밖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악마는 스스로가 악 그 자체이며 이를 행하는데 어떠한 비용과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온전히 스스로가 자립할 수 있는 상태이다.</p>
<p>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개인일 때 모든 행동에 제약이 있으며, 자본에 국한되지 않은 비용이 존재한다. 인간은 반드시 타인과의 교류가 필요하며, 이 시점부터 인간은 완전무결하지 않다. 완전무결하지 않은 인간이 행하는 악 또한 완전무결하지 않으며, 이는 반드시 악을 행한 사람을 자멸의 길로 인도하게 된다.</p>
<h2 id="heading-kirrtojsmytsoittlzwg7jwf7j2aioywtoynuoyencdsnpdrqbjrozwg7zal7zwy64qu6rcakio"><strong>불완전한 악은 어째서 자멸로 향하는가</strong></h2>
<p>인간 혼자서 행할 수 있는 영향력은 너무나도 작다. 그러나 개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룬다면, 그 영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악행을 저지를 때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은 쉽게 저지당할 수 있다. 개인이 저지르는 악행은 크면 클수록 빠르게 본인을 자멸로 이끌어 갈 것이다. 하지만 만약 연관된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를 저지하기 어려워진다.</p>
<p>많은 사람이 연관되어 힘을 보태주고 악행을 위한 집단이 구성된다면, 이는 걷잡을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되고 그 구성원들에 큰 사익을 안겨줄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불완전한 악은 다시 한번 이 집단을 자멸로 이끌어가기 시작한다.</p>
<p>구성원이 다양해질수록 사익 집단을 떠받치는 욕구는 다양해진다. 사익을 추구하고자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은 자신이 양보하는 것을 참기 어려워 할 것이다. '내가 만약 양보했다가 저쪽에서 약속을 어기면 어떡하지?' 와 같은 상대방을 의심하고 자신의 손실을 견딜 수 없어하는 욕망은 결국 구성원 간의 마찰을 일으킨다. 어떤 욕구는 상충할 것이고, 어떤 이해관계는 꼬일것이다. 그로 인해 구성원들간에 서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 분쟁이 다양하고 커질수록 이는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며, 구성원 간의 마찰은 비협조로 이어지다 결국 틀어진다.</p>
<p>위와 같은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은 수면 위로 올라와선 안되기 때문에 타인의 도움을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같은 사익 집단 내에서 도움을 요청한다면 오히려 내부 갈등을 촉발할 것이고, 집단 외부에서 도움을 요청한다면 이 악행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다. 즉, 모든 구성원이 스스로의 욕구를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지 않다면 내부 분쟁, 혹은 예측하지 못한 변수는 반드시 발생한다. 자그마한 구멍이나 마찰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며, 이는 자멸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된다.</p>
<h2 id="heading-7jwf7j2eioy1noygjo2vnoycvouhncdspitsnbtripqg67cp67kv">악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h2>
<p>아무리 완전무결한 악이 스스로 자멸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악이 잠시나마 존재하는 동안은 사회, 더 나아가 인류 문명 전체의 손해나 해악을 끼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퇴보시킬 수 있다. 안타깝게도 악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려울지언정 가능한 선에서는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p>
<p>첫째는 산모와 가정의 절대적 안정과 평화이다. 산모의 신체/정신적 건강과 안정성, 가정의 분위기 등 아이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매우 안정적이고 평화로워야 한다. 산모의 상태는 태아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치며 이후 인성 부분에 매우 직접적인 기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산모와 그 가정에는 그 자체로 매우 높은 수준의 대우와 특혜가 주어져야 하며, 산모 본인이 오직 태아와 자신의 건강 관리에만 신경쓸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산모의 안정성을 바탕으로 이후 태어날 태아는 불안정한 산모에서 태어난 태아보다 안정적일 가능성이 높다.</p>
<p>둘째는 비판적 사고 교육이다. 아이는 어릴 때 노출된 환경이 가치관 형성에 매우 크게 작용한다. 아이의 부모가 아무리 안정적이고 건강했다 하더라도, 이기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추후 아이에게 그대로 유전되어 앞서 말한 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아무리 부모라 하더라도 모든것을 믿고 따르는게 아닌, 스스로 생각 해볼 수 있도록 하는 비판적 사고방식을 기를 수 있는 건강한 교육이 필수다. 타인 뿐만이 아니라 자신 또한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기비판적 사고 또한 매우 중요하다.</p>
<p>셋째는 폭 넓은 추론 교육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라는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건의 발생 과정을 그냥 외워버리거나 특별히 생각하지 않지만, 이 과정에서는 수많은 이유가 존재한다. 이 이유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미래에 내가 할 결정을 위한 추론에 합리성과 합리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즉, 폭 넓은 변수를 고려한 추론을 바탕으로 내려진 결정은 합리적인 이유를 가진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나, 그리고 나와 타인의 관계와 역학에 대해 충분히 생각한 합리적인 결정과 행동은 대체로 위에 서술한 악에 포함될 수 없다.</p>
<p>넷째는 건강한 경쟁 환경 및 교육이다. 사람이 경쟁을 하지 않는다면 발전을 하지 않지만, 경쟁이 과도하다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된다. 만약 경쟁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까지 이어진다면 이는 서로를 짓밟으려는 파괴적인 경쟁이 된다. 따라서 파멸적인 경쟁보다 건설적인 경쟁을 선호하고 지향하는 가치관이 구축되는 것은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데 매우 중요하다.</p>
<p>위와 같은 방식의 교육은 사회를 건설적으로 이끌어 나가는데 핵심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야 하고, 지금부터라도 노력한다면 미래에 언젠가는 빛을 발할 것이다. 위에서 서술했듯, 개인 한명은 사회를 바꾸기에 너무나 미미한 힘이다. 그러나 자신의 주변인 세명만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한다면, 건설적인 사회를 구축해 나가는데 매우 큰 기여를 할 것이다.</p>
]]></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망각은 저주인가 축복인가]]></title><description><![CDATA[망각은 저주인가 축복인가
많은 사람들은 망각을 저주라고 하기도 하고, 축복이라고 하기도 한다. 필히 중요한 내용을 잊어 본인에게 해가 된다면 그 사람은 망각을 저주라 할 것이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벗어나 이를 잊어 심신이 편해진다면 그 사람은 망각을 축복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류의 존속, 더 나아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함이면, 망각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읽기에 앞서
본 글은 사람 개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에 대해서 생각했고, 따라...]]></description><link>https://thoughts.lks410.me/66ed6rcb7j2aioyggoyjvoyduoqwgcdstpxrs7xsnbjqsia</link><guid isPermaLink="true">https://thoughts.lks410.me/66ed6rcb7j2aioyggoyjvoyduoqwgcdstpxrs7xsnbjqsia</guid><dc:creator><![CDATA[LKS410]]></dc:creator><pubDate>Sun, 10 Nov 2024 15:00:00 GMT</pubDate><enclosure url="https://cdn.hashnode.com/res/hashnode/image/upload/v1744997017565/705f8df4-ba2c-4b2a-9cb4-6d077ee9c8c0.jpeg" length="0" type="image/jpeg"/><content:encoded><![CDATA[<p><img src="https://cdn.hashnode.com/res/hashnode/image/upload/v1744996709729/99a8adeb-c471-41b7-a451-81fffae53edd.jpeg" alt class="image--center mx-auto" /></p>
<h2 id="heading-66ed6rcb7j2aioyggoyjvoyduoqwgcdstpxrs7xsnbjqsia">망각은 저주인가 축복인가</h2>
<p>많은 사람들은 망각을 저주라고 하기도 하고, 축복이라고 하기도 한다. 필히 중요한 내용을 잊어 본인에게 해가 된다면 그 사람은 망각을 저주라 할 것이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벗어나 이를 잊어 심신이 편해진다면 그 사람은 망각을 축복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류의 존속, 더 나아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함이면, 망각은 축복일까, 저주일까?</p>
<h2 id="heading-7j296riw7jeqioyvnuyena">읽기에 앞서</h2>
<p>본 글은 사람 개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에 대해서 생각했고, 따라서 반드시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즉, 이 글이 절대적으로 합리적이라는 뜻이 아닌 멀리, 그리고 크게 보았을 때 필자의 생각을 서술한 글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글에서 서술할 때 사용된 근거는 대체로 연구된 근거가 아니며 오직 필자의 생각과 논리적 추론을 거쳐 나온 결론이다. 필자 또한 하나의 사람이므로 필자의 논리적 추론에는 어떤 식으로든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p>
<h2 id="heading-6riw7ja17j20656a">기억이란</h2>
<p>망각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기억] 이 무엇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억을 단순히 정보의 보존으로 놓고 본다면 분명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이미 엄청난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동굴 벽화부터 시작해 석판, 종이, 이제는 디지털 기록까지, 인류는 지속적으로 진보된 저장매체를 활용하고 바꿔가며 수많은 기록을 저장했다. 하지만, 이 기록에는 그 기록의 감정이 결여되어있다. 기록을 이해하고 그 정보를 암기한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체화할 순 없을 것이다.</p>
<p>예를 들자면 우리는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얼마나 처절한 전투를 벌였을지 알 수 없다. 오직 장군의 난중일기를 통해 그를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당시 백성들과 군사들이 느꼈을 처절함, 위기감, 상실감, 고통을 절대로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영상과 음성 매체로 당시의 상태에 더욱 몰입도를 높일 순 있지만, 이 또한 편법이고 공감도만 높일 뿐, 그 자체의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영화 [명량]을 보고 전쟁의 참상을 보고 들을 수 있었지만, 피부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영화를 다 본 후 우리는 이를 잊는다.</p>
<p>즉,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온전한 [기억]이란 그 상황에 대해 모든 감각과 그 당시로부터 전달되는 형이상/하학적 정보 모두를 일컫는 말이다.</p>
<h2 id="heading-6riw7ja17j2yioufuoydtoymia">기억의 노이즈</h2>
<p>집단의 기억력은 구성원의 기억력과 수명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인류 전체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놓고 보았을 때, 이 집단의 기억력은 개인이 느낀 기억보다 난잡하다. 누군가는 기억을 잃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해 어떠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 할 수 있고, 누군가는 없는 기억을 사실로 믿으며 그러한 일이 현실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즉, 노이즈가 매우 심하다.</p>
<p>하지만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면 개인이 잊거나 없는 일을 기억한다면 그것 또한 노이즈이지 않은가? 심지어 보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물론, 이건 정확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순 없다. 개인과 집단의 기억은 그 중요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 개인의 기억은 문제가 발생했을 시 개인이 그 기억을 의심하든 의심치 않든 상관없이 결국 스스로가 미래에 결정하는 데 활용되며 그 결정에는 본인이 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집단은 그렇지 않다. 집단은 다수가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기억의 노이즈는 집단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만약 어떠한 결정이 자신의 존속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면, 개인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한 사람이 죽는 것과 집단의 잘못된 결정 탓에 모두가 죽는 건 의미가 크게 다르다. 즉, 원론적으로는 집단을 한 사람처럼 볼 순 있으나, 그 무게감이 현저하게 다르므로 이는 동일시될 수 없다.</p>
<h2 id="heading-66ed6rcb7j2aioyggoyjvoydtoulpa">망각은 저주이다</h2>
<p>망각은 앞서 말한 기억의 노이즈 중 일부이다. 그러나 망각은 없는 기억이 만들어지는 것보다 위험하다. 모든 사람에게 발생하고 그 정도를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집단의 결정에 있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p>
<p>가장 좋은 예시는 전쟁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쟁은 당연시되어 왔다. 땅을 넓히고, 세력을 확장하여 자신의 사람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살기 위함도 있고, 혹은 단순히 지도자의 욕심이나 감정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전쟁의 범위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장되었고, 이는 수많은 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물리적 심리적 피해를 줬다. 역설적으로, 인류는 회복하기 힘든 수준의 상처를 입고서 대규모 전쟁을 그만두었다. 또한 전쟁의 낌새가 보인다면 국민/백성들은 이를 극구 반대하고 관계자를 질타하여 전쟁의 확산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최근 그러한 정신은 눈에 띌 정도로 옅어지고 오히려 전쟁에 찬성하고 이를 즐겁게 여기는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 실제 한 국가의 국민들은 자신의 국가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90%의 찬성률을 보인다. 어떤 나라는 현재도 전쟁 중이며 민간인 사살도 서슴지 않는다. 또 다른 나라는 계속 전쟁을 시작하려고 간을 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를 질타하며 실질적으로 제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류 전체가 전쟁의 참혹함을 잊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모든 인류가 당시 겪은 전쟁을 온전히 기억하고, 그 기억이 계승되어 왔다면 이러한 사태는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았을 것이다.</p>
<p>즉,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인류는 망각으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감정적 통제가 옅어지고, 이는 과거 2차 세계 대전의 과오를 다시 저지르게 되지만, 무기의 발전과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1, 2차 세계 대전을 합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수준의 사상자와 문명의 후퇴를 겪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인간에게 있어 미약한 수준의 트라우마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재현되어선 안 되는 것들은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감정적인 영역에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기억의 소실은 이러한 제동을 무력화하고, 결국 이는 인류에게 독이 된다. 즉, 필자는 위 주제 “망각은 축복인가 저주인가”에 대해 망각은 저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p>
]]></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인간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할 수 있는가]]></title><description><![CDATA[읽기에 앞서
본 글은 사람 개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에 대해서 생각했고, 따라서 반드시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즉, 이 글이 절대적으로 합리적이라는 뜻이 아닌 멀리, 그리고 크게 보았을 때 필자의 생각을 서술한 글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글에서 서술할 때 사용된 근거는 대체로 연구된 근거가 아니며 오직 필자의 생각과 논리적 추론을 거쳐 나온 결론이다. 필자 또한 하나의 사람이므로 필자의 논리적 추론에는 어떤 식으로든 오류가 발생할...]]></description><link>https://thoughts.lks410.me/7j246rce7j2aiouvuouemoulvcdsnittlbqg7zie7j6s66w8io2proq4so2vocdsijgg7j6i64qu6rca</link><guid isPermaLink="true">https://thoughts.lks410.me/7j246rce7j2aiouvuouemoulvcdsnittlbqg7zie7j6s66w8io2proq4so2vocdsijgg7j6i64qu6rca</guid><dc:creator><![CDATA[LKS410]]></dc:creator><pubDate>Thu, 17 Oct 2024 15:00:00 GMT</pubDate><enclosure url="https://cdn.hashnode.com/res/hashnode/image/upload/v1744997074626/5b8021cd-cdd2-4de0-88a2-740da9c730db.jpeg" length="0" type="image/jpeg"/><content:encoded><![CDATA[<p><img src="https://cdn.hashnode.com/res/hashnode/image/upload/v1744996926233/fee4327b-e1bb-430a-995b-6213dac03a6d.jpeg" alt class="image--center mx-auto" /></p>
<h2 id="heading-7j296riw7jeqioyvnuyena">읽기에 앞서</h2>
<p>본 글은 사람 개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에 대해서 생각했고, 따라서 반드시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즉, 이 글이 절대적으로 합리적이라는 뜻이 아닌 멀리, 그리고 크게 보았을 때 필자의 생각을 서술한 글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글에서 서술할 때 사용된 근거는 대체로 연구된 근거가 아니며 오직 필자의 생각과 논리적 추론을 거쳐 나온 결론이다. 필자 또한 하나의 사람이므로 필자의 논리적 추론에는 어떤 식으로든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p>
<h2 id="heading-66y466qf7j2yiouwnoyghcdrj5nqula">문명의 발전 동기</h2>
<p>인류 문명의 발전은 주로 생존과 편의성 향상을 위한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초기 인류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해 도구를 개발하고, 불을 사용하며, 농업을 시작했다. 이러한 초기 단계의 발전은 단순히 생존을 보장하고 생활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p>
<p>시간이 지나면서 인류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편안한 이동을 위한 교통수단의 발명부터 시작하여 빠른 소통을 위한 통신 기술의 발전, 더 안락하고 오랜 삶을 즐기기 위한 의료 기술의 혁신 등,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개선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였다. 인류는 더 빠르고, 더 안전하며, 더 편리한 삶을 살기 위해 과학 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동기는 인간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열망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요성으로부터 출발하였다.</p>
<p>더 나아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나가려는 특성을 보인다. 이는 자연재해나 기후 변화 같은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기술 발전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렇듯 문명의 발전은 생존과 번영,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응에서 비롯된 동기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루어져 왔다.</p>
<h2 id="heading-7kea7ian7isx7jeqioupheydtcdtkodrprag66y466qf">지속성에 독이 풀린 문명</h2>
<p>그러나 이제 문명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에 봉착하기 시작했고,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수많은 것들은 스스로가 독이 되기 시작했다. 환경 오염부터 시작하여 사회적인 문제, 그리고 기술적 한계와 특이점의 빠른 도달까지, 문명은 타락과 몰락의 길을 보이기 시작했다.</p>
<p>환경오염부터 시작을 해보자. 환경오염은 산업 혁명 이후 가속화되었으며,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화석 연료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대기 중에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며, 이는 기후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기후 변화는 극심한 폭염, 폭우, 가뭄 등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생태계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자동차와 비행기, 공장을 계속 사용하고 있지만, 그로 인한 환경적인 대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는 특히 지면 해발고도가 낮은 국가들에서 눈에 띄게 보이며, 이 피해의 유명한 국가인 투발루는 상당한 위험에 처해있으며, 시기에 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지언정 위기 자체는 모두가 동의한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로 인해 영향을 받는 작은 야생동물들 또한 위험에 처해 있다. 예를 들어, 식물의 교배와 번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꿀벌은 기후 변화와 서식지 파괴로 인해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꿀벌의 감소는 농작물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는 식량 공급의 불안정성을 야기할 수 있다. 꿀벌뿐만 아니라 다른 곤충과 동물들도 기후 변화로 인해 서식지와 먹이원을 잃고 있으며, 이는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p>
<p>또한, 플라스틱의 과도한 사용은 바다와 육지를 오염시키고 있으며, 야생 동물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들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서 해양 생물들이 이를 섭취하거나 폐기물에 갇혀 고통받는 사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간은 편리함을 위해 플라스틱을 사용하지만, 그로 인해 지구 전체의 환경이 손상되고 있으며 후손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야생동물은 생태계의 균형과 존속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두세 가지 고리가 끊어질 수는 있지만, 그 선을 넘어가면 생태계는 깨지고 급속도로 악화할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결과로 인류 역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플라스틱 오염이 심화하면, 식수와 먹이 사슬에도 문제가 생겨 인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근에는 미세플라스틱이 인체 내에 축적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인체 건강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의 편리함을 위해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플라스틱을 줄이고, 더 지속 가능한 대체재를 찾는 노력이 시급하다.</p>
<p>사회적인 문제 역시 문명의 독이 되어가고 있다. 도시화와 산업화는 경제적 발전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며 주거 문제와 실업 문제, 그리고 극심한 경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개인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높이며, 사회 전체에 불평등과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사회적 연결의 단절과 인간 소외의 문제도 도시화의 부작용 중 하나로, 물질적 편리함을 얻기 위해 많은 이들이 정신적 행복을 희생하게 되었다.</p>
<h2 id="heading-7j246rce7j2aioydtoulvcdtlbtqsrdtlaag7iiyioyeioukloqwga">인간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가</h2>
<p>필자는 지금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문명에 브레이크 따윈 없고, 오직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문명은 인류를 떠받치는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과 같아서, 이를 일시에 정지하거나 대거 엎는 건 불가능하다. 당장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당신은 후손을 위해 플라스틱을 안 쓰고 자원을 아껴 쓸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자. 과연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필자 또한 이 질문을 받는다면 못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필자보다도 환경을 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 뜻은 인류 전체의 마음을 일괄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당장 해결은 불가능한 것이다. 오직 인류와 문명을 떠받치는 인프라와 이해관계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정리하는 방법밖에 없다.</p>
<p>혹자는 개인의 절약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 반문할 수 있다. 이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은 편의성 앞에 무너져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고, 모두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기에 국경을 막론하고 사회와 국가가 나서야 한다. 신소재와 신기술로 친환경을 이루어내어야 한다.</p>
<p>인간은 생존에 직결된 문제가 눈앞에 닥쳐오지 않는 이상, 자신의 안락과 편의성 앞에 지속적인 노력을 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는 과거 수많은 위기에서 잘 드러났다. 예를 들어 한국 IMF의 전조증상은 뻔히 보였다. 하지만 절대다수는 이 지표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알리지 않았다. 심지어 금융권 사람들조차도 이 지표를 무시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문제가 닥쳐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자, 그제야 사람들은 IMF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움직였다. 물론 과거 대한민국의 IMF 상환은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례적이었다. 중요한 건 IMF가 터지기 전 사람들은 문제의 징후를 무시하고, 편안한 현재를 유지하고자 했다. 이처럼 인류는 항상 눈앞에 닥친 위협에 대해서만 반응하고, 장기적인 위험에 대해 미리 대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p>
<h2 id="heading-6rkw66gg">결론</h2>
<p>인간은 대체로 현재의 편리함과 안락함을 위해 미래를 희생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인류의 존속 수명을 단축하게 될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인류는 신소재와 신기술 개발 및 연구에 집중적,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p>
]]></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인공지능의 지속적인 개발에 대한 예측과 그에 관한 여파]]></title><description><![CDATA[현존 최강 언어모델의 시작
2020년 6월, 팬데믹 속에서 탄생한 자기회귀 언어모델 GPT-3 는 “아는 사람만 아는” 언어모델이었다. 업계에서는 가히 충격적일 정도로 자연스럽고 능력이 출중한 언어모델이었던 GPT-3 는 미세조정을 거쳐 GPT-3.5로 업그레이드 되었고, 일명 ChatGPT 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이 언어모델은 2022년 연말을 장식함과 동시에 2023년의 대인공지능 시대를 여는 초석이 되었다.
GPT란
Generative Pr...]]></description><link>https://thoughts.lks410.me/7j246ro17kea64ql7j2yioyngoygjeyggeyducdqsjzrsjzsl5ag64ya7zwcioyyioy4oeqzvcdqt7jsl5ag6rsa7zwcioyxro2mja</link><guid isPermaLink="true">https://thoughts.lks410.me/7j246ro17kea64ql7j2yioyngoygjeyggeyducdqsjzrsjzsl5ag64ya7zwcioyyioy4oeqzvcdqt7jsl5ag6rsa7zwcioyxro2mja</guid><dc:creator><![CDATA[LKS410]]></dc:creator><pubDate>Tue, 05 Dec 2023 03:00:00 GMT</pubDate><enclosure url="https://cdn.hashnode.com/res/hashnode/image/upload/v1745077754648/efaa1071-652a-4106-9bc4-39592cc1940e.png" length="0" type="image/jpeg"/><content:encoded><![CDATA[<h2 id="heading-7zie7kg0ioy1noqwlsdslrjslrtrqqjrjbjsnzgg7iuc7j6r">현존 최강 언어모델의 시작</h2>
<p>2020년 6월, 팬데믹 속에서 탄생한 자기회귀 언어모델 GPT-3 는 “아는 사람만 아는” 언어모델이었다. 업계에서는 가히 충격적일 정도로 자연스럽고 능력이 출중한 언어모델이었던 GPT-3 는 미세조정을 거쳐 GPT-3.5로 업그레이드 되었고, 일명 ChatGPT 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이 언어모델은 2022년 연말을 장식함과 동시에 2023년의 대인공지능 시대를 여는 초석이 되었다.</p>
<h2 id="heading-gpt">GPT란</h2>
<p>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는 2018년부터 고안되고 개발된 구조이다. 확률적인 단어 예측을 통해 문장을 완성하는 단순한 시스템인 것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시스템은 학습 모델이 점점 커질수록 놀라운 성능을 보였다. 단순한 시스템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마치 바퀴처럼 말이다. 둥근 원판은 강도만 버텨준다면 얼마든 무거운 물건을 옮길 수 있는 바퀴가 되어준다. 그 바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일의 효율이 달라질 수 있다.</p>
<h2 id="heading-7j246ro17kea64ql7j2yiouwnoyghcdsho3rj4q">인공지능의 발전 속도</h2>
<p>2018년 고안된 개념과 그 제품은 2022년이 되어서야 대중들에게 공개될 정도로 다듬어졌다. 4년간의 끝없는 노력과 실험의 결과물인 것이다. GPT-3 는 최초 공개 당시 1,750억 개의 매개변수로 동작했다. 하지만 단 1년 만에, GPT-3를 만들어 낸 OpenAI 사는 1조 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GPT-4를 만들어 냈다.</p>
<p>GPT 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에서 미래를 본 거대 기업들은 앞다투어 생성형 인공지능을 개발해대기 시작했고, 그 밑거름이 되는 하드웨어인 GPU 시장은 암호화폐 채굴 이후 또 다시 대호황을 누렸다.</p>
<p>Google 사의 PaLM / PaLM 2, Meta 사의 LLaMA, Naver 사의 ClovaX, xAI 사의 Grok 등 자연어 모델은 말할 것도 없으며, Stability AI 의 Stable Diffusion, Novel AI, OpenAI 사의 Dall-E 와 같은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 또한 발빠르게 개발되었다.</p>
<p>이렇게 GPT-3.5 모델이 공개된 후, 정말 단기간에 수많은 회사 뿐만이 아닌 오픈소스 커뮤니티 또한 인공지능 개발에 뛰어들어, 인공지능 전체의 개발 속도는 유례없을 정도로 가속화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된 GPT-3.5를 아득히 뛰어넘는 더욱 똑똑한 멀티모달 GPT-4 Turbo 가 등장하였다.</p>
<p>OpenAI 사는 GPT-4 Turbo를 가능한 만큼 부려먹으려 했는지, 기존에 없던 기능들을 대거 추가했다. 자연어로 조정할 수 있는 만큼 조정하는 GPTs, 그리고 스스로 작업을 결정하는 ChatGPT 까지, 계속해서 상상만 했던, 혹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기능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변화는, GPT-3.5 기반 ChatGPT 가 처음 공개된 지 1년도 되지 않았을 때다.</p>
<h2 id="heading-7j246ro17kea64ql7j20ioyctuyxkcdrr7jsuzjripqg7jib7zal">인공지능이 삶에 미치는 영향</h2>
<p>혹자는 인공지능이 발전된다 한들 우리 삶엔 큰 차이가 없을 거라 주장한다. 마치 그냥 조금 성능이 더 좋은 도구가 나온 것처럼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는 객관적으로 틀린 주장이다. 인공지능은 그 자체로 산업혁명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제 4차 산업혁명). 아직 가장 강력한 GPT 모델들은 산업 혁명을 이루기엔 빈약한 편이지만, 가끔 사용하다 보면 강인공지능이 빠르게 개발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3년 11월 초에 확인된 GPT-5 개발 여부 및 기존 개발자료 폐기 여부는 또 다시 필자를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LLM 의 가장 큰 취약점 중 하나인 환각 증상을 거의 완전히 해결했다는 내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않아 폐기했다는 내용과 더불어, GPT-5 는 GPT-4 멀티모달에 이어 이미지 입출력 뿐만이 아닌 영상 입출력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즉, 정말로 실시간 영상을 해석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다. 사람이 하는 것과 같은 해석과 분석이 아니다. 기술적 의미에서 해석과 분석이다)</p>
<p>인공지능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미 여러가지가 존재한다. 이미 GPT-4 를 통한 여러가지 응용 프로그램들이 출시되었고, 더 나아가 GPT 시리즈를 활용한 확장 프로그램들은 이미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 삶의 윤택함을 제공한다. 개발 도구의 확장프로그램인 GitHub Copilot 은 출시 당시 GPT-3 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나 아직도 애용되며, 코드 개발 시간을 최대 60%까지 단축시켜준다는 통계 자료 또한 존재한다. 23년 상반기에 발표된 Office Copilot 은 Microsoft 사의 Office 서비스들, 즉 OneDrive, Outlook, Teams, PowerPoint, Word, Excel 등과 연동되며 스스로 자료를 불러오고 해석한 후, 자료를 만들어 내는 것까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PowerPoint에서 ~~ 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Copilot 은 스스로 OneDrive, Outlook, Teams에서 나온 자료들을 바탕으로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만들어 내며 이를 기반으로 스피커노트나 요약 문서를 Word 로 다시 재생성하고, Excel 의 자료를 기존 정보에 입각해 다시 해석하거나 새로운 테이블을 생성해 또 다른 그래프를 그려내는 작업까지 완료된다.</p>
<p>OpenAI 사의 Whisper 인공지능(자막 달이)은 오픈소스 커뮤니티를 거치며 더욱 정확도 높은 인공지능이 되었고, 전엔 볼 수 없었던 Speech-to-Text 퀄리티를 보였다. 수 시간 영상 한편을 넣으면 컴퓨터의 성능에 따라 수십 분 내로 자막 파일이 완성된다. 언어가 복합적이어도 상관없다.</p>
<p>이렇게 강력한 인공지능은 얼마 있지 않아 많은 일자리를 없애게 될 것이다. 실제로 Office Copilot, GitHub Copilot은 적게는 한두명, 많게는 10명 수준의 업무를 거뜬하게 처리해 준다. Whisper 인공지능은 사람이 자막을 달려면 계속 들어야 하는 영상을 순식간에 단축시켜준다. 약간의 부족함이 있지만, 혼자서 다듬을 수 있는 양만큼 일을 처리 해 준다면, 그 어떤 기업이 사람을 고용하겠는가?</p>
<h2 id="heading-642u7jqxioqwnouwnouqnoulpouptdog64kz6rsa7kcbioyyioy4oq">더욱 개발된다면: 낙관적 예측</h2>
<p>범인공지능 (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의 출범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 어느 정도의 기간동안 사회는 이로 인한 과도기를 지날 것이다. 기업과 고용주는 인공지능의 달콤한 맛에 사람들을 고용하는 대신, 기계를 더욱 사용할 것이고 그로 인한 실업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하고만 있지 않는 법, 정치로 눈을 돌린 사람들은 각종 제도와 규제를 만들라고 요구할 것이고, 그런 정책을 펼치는 정치인이 높은 확률로 당선될 것이다.</p>
<p>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정치인은 계속해서 인공지능에 대한 규제와 더불어 기업들에게 일정 비율의 작업은 사람 활용을 강제하며 그중 일부는 낮은 임금을 받되 취업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국가 단위에서,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이와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면 이를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p>
<p>이러한 임시방편과 같은 정책과 규제로 메꾼 과도기는 범인공지능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난 후, 효용성을 크게 잃을 것이다. 안정성과 성능, 그리고 정확도를 모두 갖춘 범인공지능은 사업부터 시작해 제조까지 모두 스스로 처리가 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개발규제가 난리를 피우더라도 과학의 발전은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어디선가 언젠간 등장할 것이다. 그렇게 사회의 큰 자리 중 하나를 잡게 된 범인공지능은 높은 성능, 정확도, 안정성을 바탕으로 대중들과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을 것이다.</p>
<p>신뢰를 가진 대중은 범인공지능의 범위를 확장하자고 할 것이다. 특히 현시점으로 미루어 보아 신뢰도가 낮은 사법기관과 행정기관, 더 나아가 입법기관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자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물론 정치권은 크게 반발할 테지만, 계속된 사람들의 요구는 시범 운영을 시작시킬 것이고, 한번 물꼬를 튼 고성능 범인공지능은 완전히 대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판결을 더욱 빠르게 처리하고 공정하게 처리한다면 대중은 인간보다 고성능 범인공지능을 더욱 지지할 것이고, 이를 정치권이 반대하더라도 시위와 같은 강도 높은 수단으로 고성능 범인공지능이 결국 궤도에 오르게 될 것이다.</p>
<p>범위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간 범인공지능은 결국 대부분의 노동력을 대체할 것이다. 사고력과 물리적 노동력이 필요한 대부분 직업을 대체해 나간 범인공지능은 결과적으로 화폐가 필요 없게끔 할 수 있으며, 모두가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이 될 것이다.</p>
<p>인류의 마지막 발명품인 범인공지능은 결국 휴머노이드를 연구/개발 및 생산하여 웬만한 가정 노동까지도 대체할 수 있게 할 것이며 노동으로부터 완전하게 해방이 된 인류는 인공지능이 만들어 둔 환경에서 즐기고 싶은 대로 즐기며 걱정 없이 살 것이다.</p>
<h2 id="heading-64kz6rsa7kcbioyyioy4oeyxkcdrjidtlzwg67cy66ggoidruytqtidsoieg7jii7lih">낙관적 예측에 대한 반론: 비관적 예측</h2>
<p>하지만 위와 같은 필자의 주장에는 여러 가지 논리적 허점이 존재한다.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일반적인 인간의 본성은 끊임없는 욕망을 추구하며 타인보다 더 잘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고, 사회적 지위는 차치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불평등을, 더 정확히는 남들보다 더 부유함을 추구한다. 즉, 경제적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사람들은 경제적 평등을 외칠 테지만 이미 기득권과 피라미드의 상위권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평등을 막으려 안간힘을 쓸 것이다.</p>
<p>‘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와 같이 타인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을 시사하는 옛말은 이 말고도 수두룩하게 빽빽하다. 즉, 과거로부터 인간은 남이 자신보다 더 나은 것을 가만히 보고 있기 힘들고 평등보다도 자신이 더 나은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시간과 역사로 증명되었다.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땅을 넓히려 하여 백성들의 등골을 계속해서 뽑아먹으려 드는 지배층은 색채만 조금 바뀌었을 뿐, 아직까지도 이어진다.</p>
<p>그러나 현재와 과거의 큰 차이점은 기술에서 드러난다. 과거의 지배층은 국가와 지역을 막론하고 무자비하게 세금을 걷어갔지만, 확증편향을 가속하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여러 이야기를 하며 부풀려질지언정 여러가지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YouTube, Instagram과 같은 알고리즘 기반 추천 시스템은 자신이 관심 있는 것만 보여주며 이외의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처럼 만든다. 즉, 자신이 한쪽에 치우쳐진지 조차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가짜뉴스와 확증편향이 내는 시너지 효과로 인해 다른 의견은 무조건 반역자라는 인식을 물밑에 깔게 만든다. 만약 지배층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가짜뉴스를 내보내게 된다면 다수의 사람은 이를 믿을 것이고, 이에 따라 자신에게 득이 될 수 있는 선택지를 저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p>
<p>위 이야기는 인공지능 그 자체와는 큰 연관이 없다. 하지만 이 위에 인공지능을 얹기만 한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기득권은 자신의 권력을 탄탄하게 하기 위해 기술자들에게 막대한 대금을 지불하며 인공지능을 악의적인 의도로 활용할 수 있게끔 바꾸고 실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미세조정 등을 통해). 이렇게 악의 속에서 탄생한 인공지능은 인간의 절대적 평등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할 것이다.</p>
<p>낙관적 관측에서 언급했던 대로 사람들이 시위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하지만 이 논리 또한 위와 같은 인간성이 빠진 논리다. 정치권은 사실 민생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오직 누가 권력을 얻느냐, 그 권력을 얼마나 행사하여 문제가 되지 않느냐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당근과 채찍이 몸에 밴 정치인들은 과거 3S 정책과 같은 당근과 가짜뉴스와 같은 채찍으로 대중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p>
<p>이뿐만이 아니다. 만약 시위에 있어 약간이라도 불리함에 대해 언급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절대로 시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지킬 것이 조금이라도 남은 사람은 방어적으로 바뀐다. 지킬 것이 없는 사람은 공격적으로 나서지만, 조금의 지킬 것이 남은 사람은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이는 조금만 생각을 해본다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즉, 정치권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사람들이 움츠러들도록 유도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권력 행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진 대중의 경제 상태는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희망을 붙들기 위해 정치권에서 말하는 대로 움직일 것이며, 이는 불평등을 급속도로 악화시킬 것이고, 낙관적 관측에 완전히 반대되는 결론이다.</p>
<h2 id="heading-6rkw66gg">결론</h2>
<p>인간적인 면모를 본다면 그다지 희망적인 관측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성이 사회에서 나타난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공산주의다. 공산주의 국가는 최초의 개념을 보았을 때 유토피아 그 자체이다. 모두가 평등하며 모두가 일하고, 모두가 동일한 분배로, 모두가 함께 발전해 나가는 것. 하지만 유토피아란 본디 존재하지 않는다. 개념은 좋지만, 이는 인간에게 욕망과 야망이 없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즉, 인간성을 완전히 무시한 이념이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수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고 공산주의는 그러한 변수를 철저히 무시하였다. 그 결과, 실제로 적용한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발전 속도가 매우 느리거나 사회주의로 돌아서는 실패를 겪었다. 지도층은 복지로 인한 예산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곳간을 착실히 쌓아 자신의 배를 불리고, 이에 따라 피지도층 (사실상 피지배층)은 타격을 입는 결과가 생긴다.</p>
<p>이러한 인간성이 섞여 들어 가게 된다면, 평등을 추구하는 이념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즉, 낙관적인 예측은 처음부터 실현하기 어렵다. 피라미드의 하위권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것은 상위권이 가진 인공지능에 의해 심화할 뿐, 빈익빈부익부가 더 나아질 거란 예측은 하기 매우 어렵다고 생각된다.</p>
]]></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인류 문명 발전 동기와 종착점]]></title><description><![CDATA[글을 읽기에 앞서
이 글은 2023년 2월에 작성 되었으며, 기술 수준은 2023년 2월 대중에게 공개 되어있는 기술들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현재 인공지능의 창작물과 활용에 대한 법안과 제도가 존재하지 않고, 현재 논쟁중인 상태에서 작성되었음을 감안하기 바란다. 또한, 이 글은 정제되지 않은 생각과 의견을 정리하며 작성하였기 때문에 일부 논리적 비약을 해결하지 못하였을 수 있다.
인류 문명 발전의 종착지
인류의 문명이 꾸준히 발전 해 왔다는 ...]]></description><link>https://thoughts.lks410.me/4ysl4yw14yar4ysf4ywyiogehugfruggqgehugfpggvcdhhifhhahhhqhhizhhaxhhqsg4ysd4ywp4ya84ysa4yw14ysl4ywqiogejogfqeggvogejugfoeggqogejogfpeggtw</link><guid isPermaLink="true">https://thoughts.lks410.me/4ysl4yw14yar4ysf4ywyiogehugfruggqgehugfpggvcdhhifhhahhhqhhizhhaxhhqsg4ysd4ywp4ya84ysa4yw14ysl4ywqiogejogfqeggvogejugfoeggqogejogfpeggtw</guid><dc:creator><![CDATA[LKS410]]></dc:creator><pubDate>Thu, 23 Feb 2023 03:00:00 GMT</pubDate><enclosure url="https://cdn.hashnode.com/res/hashnode/image/upload/v1744997102138/24b22dcc-71d1-45ba-b40d-3e698ee313ff.jpeg" length="0" type="image/jpeg"/><content:encoded><![CDATA[<p><img src="https://cdn.hashnode.com/res/hashnode/image/upload/v1744996472982/0f819d80-6d35-43af-ad73-1a91ebdb3152.jpeg" alt class="image--center mx-auto" /></p>
<h2 id="heading-6ria7j2eioydveq4soyxkcdslz7shjw">글을 읽기에 앞서</h2>
<p>이 글은 2023년 2월에 작성 되었으며, 기술 수준은 2023년 2월 대중에게 공개 되어있는 기술들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현재 인공지능의 창작물과 활용에 대한 법안과 제도가 존재하지 않고, 현재 논쟁중인 상태에서 작성되었음을 감안하기 바란다. 또한, 이 글은 정제되지 않은 생각과 의견을 정리하며 작성하였기 때문에 일부 논리적 비약을 해결하지 못하였을 수 있다.</p>
<h2 id="heading-7j2466wyiousuouqhsdrsjzsoitsnzgg7kkf7lcp7kea">인류 문명 발전의 종착지</h2>
<p>인류의 문명이 꾸준히 발전 해 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석기 시대부터 천천히 발전을 시작하여 20세기에 들어서는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21세기인 2023년, 전례없는 인공지능 모델들이 전 세계를 강타하며 화두에 올랐다. OpenAI 에서 개발한 GPT-3 모델, CompVis 그룹에서 개발한 Stable Diffusion 딥러닝 모델과 같이 뛰어난 모델들은 인간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할 작업을 몇초, 혹은 몇분만에 완성시킨다. 이 때문에 혹자는 인공지능을 두고 윤리와 법적인 문제를 논하고, 다른 자는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GPT-3, Stable Diffusion 과 같은 모델들은 물론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지만, 동일 분야의 인간이 작업한 그것보다 완성도는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아 아직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 보완되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것이다. 이미 Copilot, ChatGPT 와 같은 언어 모델 기반 인공지능 서비스들은 실제 업무에서 빛을 발휘 하기도 하고, NovelAI 와 같은 이미지 모델 기반 인공지능 서비스들은 예술 대회에서 대상을 탄 적이 있다. Copilot, ChatGPT, NovelAI 와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들은 매우 저렴한 가격만으로 동일 가격 대비 사람의 노동력보다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즉, 가성비가 무한함에 가깝다. 이는 곧 인간의 노동력이 인공지능 모델에게 대체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p>
<p>이제까지 모든 노동, 창작, 제조, 설계등 사회와 경제의 기반이 되는 것들은 인간이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인간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그러나 이것은 머지 않은 미래에 인공지능이 다수를 대체할 수 있다. 높은 노동 가성비를 가진 인공지능은 많은 기업들에 의해 사용될 것이고, 이는 기존 작업을 하던 관련 직원들의 해고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체 과정이 단 한번만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결코 없다. 가장 단순한 단계의 작업이 대체된다면, 그 다음 단계가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생산라인을 예로 들어보자. 자동차의 양산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컨베이어벨트는 단순히 조립할 섀시를 일정한 속도로 한 지점부터 다른 지점으로 옮겨주는 역할을 하는 것 뿐이였다. 실제 조립은 인간이 해 왔다. 그러나, 이후 기계의 정밀도가 발전하며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조립하는 많은 인력은 기계로 대체되었다. 이와 같이 가장 단순한 작업, 즉 밀기와 같은 시스템은 컨베이어벨트로 대체되었고, 이후에는 그 다음으로 단순한 작업인 조립이 대체되었다. 이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이전 단계가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면 그 다음 단계 또한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고력이 필요한 작업은 과연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Google DeepMind 의 AlphaGo 대 이세돌 경기만 보아도 기계의 연산은 조건과 자료만 있다면 인간보다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경기 이후 불과 4년 후 등장한 GPT-3 모델, 5년 후 등장한 Stable Diffusion 모델, 그리고 GPT-3 모델을 가공하여 만들어진 ChatGPT 와 같은 인공지능들은 실제로 인간의 창의성과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을 인공지능이 대신 처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곧 기업체에게 있어 매우 능력 좋으며 값 싼 직원을 얻는것과 마찬가지다. 기업주로서 이보다 더 환상적일 수 있을까? 값싼 노동자가 수준급 제작물을 만들어 내며 그 시간 또한 수 배 이상 빠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게 있어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을것이다. 여러 기업들은 최대한 빠르게 직원을 인공지능으로 대체 할 것이며, 가장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굵직한 임원직을 제외한 나머지 사원들은 모두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 즉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그 굵직한 임직원들 뿐일 것이며, 이는 사회와 경제, 더 나아가 인류의 자멸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p>
<p>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현대 사회에서 제도적인 신분과 계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질적 신분과 계층은 여전히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의 보유량은 곧 그 사람의 계층과 신분을 나타낸다. 이러한 계층과 신분은 안정적인 분포를 유지하여야 한다. 만약 이가 붕괴된다면 사회의 안전함, 심지어는 물리적 안전함까지 침해받을 수 있다. 만약 최상위 층과 최하위 층의 완충인 중간 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최하위 층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물고 뜯을것이며, 이는 곧 위해를 가함으로서 타인의 재물을 강탈해 가는 것과 같이 자멸의 길로 들어서는 지름길이다.</p>
<p>기업의 과한 인공지능 채용은 위와 같은 상황의 발생을 촉진시키며, 이는 곧 인공지능이 의식을 가지지 않았음에도, 인간으로부터 비롯되어 인공지능이란 촉매로 가속된 자멸을 의미한다. 즉, 인류에게 있어 마지막 발명품이 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자멸을 야기할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p>
<h2 id="heading-7j2466wyiousuouqhsdrsjzsoitsnzgg64z6riw">인류 문명 발전의 동기</h2>
<p>앞서 말한대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자멸을 야기할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는데, 대체 어떠한 이유로 똑똑하다는 인공지능 연구원들은 개발을 멈추지 않을까? 그들은 과연 인공지능이 도구로서 인류의 자멸을 촉진하는 촉매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물론 못했을 수 있지만, 연구 과정에서 자신들의 작품인 인공지능이 내놓는 결과물을 보고 소름 끼치지 않았을리 없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의문을 해결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개발이 문명 발전에 일부라면, 대체 문명의 발전은 어디를 향해, 어떠한 이유로 발전을 하는 것일까?</p>
<p>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보며 문명의 발전을 추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최초의 인류는 사냥을 다녔고, 채집을 하며 살아남았다. 흔히 말하는 원시 인류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간석기와 같이 정교하게 만든 도구를 사용하여 조금 더 편리한 작업을 하며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청동기, 철기 시대를 지나며 뗀석기, 간석기와 같은 돌 도구는 청동과 철을 마음대로 주조할 수 있게 되며 더 성능이 좋고 내구성이 뛰어난 도구들을 만들어내었다. 이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높은 효율로 더 많은 작업을 석기 도구보다 편리하게 할 수 있게 해주고, 전투를 하는 이들에게는 높은 살상력으로 적은 힘으로도 석기 무기보다 편리하게 적을 처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플라스틱의 시대에는 적당한 단단함을 가진 값 싼 물건이나, 적절한 유연성을 가진 포장제와 같이 기존보다 편리한 대체제를 제공하였다. 반도체 시대에 들어서는 복잡한 연산과 자료 처리들에 강점을 맞춘 컴퓨터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정보 처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문명의 발전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것, 바로 편리함이다. 문명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 편리함은 양날의 검과 마찬가지다. 이 뚜렷한 문명의 목적으로 인한 부작용은 곧 기독교나 천주교에서 칭하는 칠죄종의 일부로 이어진다.</p>
<p>문명은 항상 자본주의 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였다. 이는 자본을 통하여 인간이 편의성을 찾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고, 많은 자본을 확보하려면 다른 자들에 비해 특출난 능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 문명의 평균을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간의 편의성은 칠죄종중 '탐욕'과 '질투' 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생존을 목적으로 시작하지만, 만약 생존이 오직 목적이였다면 문명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뛰어난 문명을 자랑했던 로마 제국은 몰락 전까지만 해도 과도한 부로 인해 음식이 넘쳐나 과식 후 구토를 하여 개워내는 등 불필요하게 음식과 자원을 소비하였다. 이 과정에서 타국 소유의 자원에 대한 탐욕과 질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적당량의 자원만 소비하며 군사적 발전을 필요치 않게 되고, 이로부터 오는 지적 발전 또한 필요치 않게 될 것이다. 즉, 문명은 그 시간에 고정되어 있을 것이다.</p>
<p>인간의 탐욕으로부터 함께 오는 다른 칠죄종은 '인색' 과 '분노' 이다. 탐욕을 충족 하였을 시에는 이를 잃지 않으려는 인색함, 그리고 탐욕을 충족하지 못하였을 때 발생하거나, 타인의 탐욕으로 인해 본인이 입은 피해로 인한 조절할 수 없는 분노가 그것이다. 또한, 위에서 간단히 설명한 ‘안정적인 사회적 계층 분포’ 의 하위층에 존재하는 자들은 스스로의 탐욕을 채우지 못한 상태가 많다. 이로 인해 복권이나 사기와 같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나태함 또한 탐욕으로부터 불러오게 된다.</p>
<p>문명은 분명 편리함을 가져다 주는 존재이지만, ’탐욕’ 과 ‘질투’ 로 출발하여 ‘인색’, ‘분노’, 그리고 ‘나태함’ 까지 가져다 주는 양날의 검이다. 적절한 양의 탐욕과 질투는 개개인의 발전에 있어 이로울 수 있으나, 브레이크 따윈 존재하지 않는 멈출 수 없는 문명의 거대한 굴레바퀴를 계속해서 굴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양의 탐욕과 질투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명은 인간 스스로의 득을 위해 발전을 시키며, 탐욕에 대한 욕구가 멈추어지지 않는 한은 영원히 발전 할 것이다.</p>
<h2 id="heading-7j246rce7j2yiouzuoyeseydhcdstqnsobhtlzjqulag7jye7zwciousuouqheydmcdqt7k">인간의 본성을 충족하기 위한 문명의 극</h2>
<p>위에서 말했던 바와 같이, 문명은 편리함을 가져다 준다. 이제껏, 그리고 앞으로도 문명은 인간의 물리적인 편안함을 가져다 줄 것은 명확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문명이 물리적인 편안함을 충족 시키는 것에서 그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만약 문명이 물리적인 편안함을 모두 충족시켜 주었다면, 과연 더욱 발전한 문명은 물리적인 편안함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인 편안함을 가져다 줄 수 없을까?</p>
<p>가톨릭과 천주교의 칠죄종을 참조하여 작성했다 한들 가톨릭과 천주교가 결코 무조건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칠죄종은 분명 인간에게 있어 무시하기 힘든 욕구와 본성의 일부를 개념화 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한번쯤은 칠죄종의 유혹을 겪는다. 인간이 이 본성을 제어 할 수 있도록 윤리와 도덕의 개념을 사회에 도입 한 이유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며, 대신 사회와 국가, 나아가 인류 문명에 이바지를 하며 발전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많은 정신적인 병을 야기할 수 있다. 만약 문명의 기술이 극에 이른 시점에 등장한 한 기계로 이를 지키지 않으면 어떨까? 이 상상의 기계는 개개인의 의식을 독립적인 가상화 환경에 연결하고 신경계에 인위적 자극을 통해 현실이 아님을 인식할 수 없게 하되 스스로가 세계의 창조주가 될 수 있는 가상 환경을 구현할 수 있으며, 그 가상 환경 안에 영원히 가둬 둔 후 생명 유지를 시킨다. 그렇다면, 과연 그 문명의 끝에 만들어진 이 상상의 기계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 정신적 편안함과 행복, 충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기계는 과연 윤리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p>
<p>이 상상의 기계 속에서 창조주가 된 사용자는 스스로 피조물 사이에서 지낼 수 있고, 자신이 가상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과연 이 사람의 부족한 욕구를 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는 곧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가상 환경에서 일어나는 데이터의 변조이니 실질적으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므로 도덕적,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으로는 이는 신체를 구속하며 벌어지는 행위이기도 하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상상 또한 비윤리적이므로 도덕적 문제가 될 수 있다.</p>
<p>이렇듯 문명의 끝에서는 결정하기 어려운 도덕적 문제가 도사린다. 당장 현재까지만 해도 펜타닐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는 고통을 참기 힘든 환자들께는 잡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지푸라기지만, 오남용자에게는 스스로를 죽일 수 도 있는 위험천만한 약이다. 만약 이 인류 문명이 그 끝에 도달하면 어떤 새로운 난제가 있을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문명의 발전 동기는 멈출 수 없는 거대한 엔진과 같지만, 그 종착점은 깎아지른 절벽일지 모른다.</p>
]]></content:encoded></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