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무결하지 않은 악은 자멸의 길을 걷는다

인류는 지금껏 서로 공존 해오며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 중심에 있던 「탐욕」 은 인류를 지구의 동물 중 드물게 동종에 칼을 겨눌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공동 생존에 유리하지 못한 선택을 하거나 이를 부추기는 것을 「악」 으로 칭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악은 본디 공동 생존에 반하는 선택이 다수를 차지한다. 따라서 필자는 한 사람 스스로가 독립적이며 완전무결한 악이 되지 않는 이상 이는 반드시 자멸을 촉진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읽기에 앞서
본 글은 정해진 기준 내에서 사고한 결과에 대해 서술하며, 이는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글에서 서술할 때 사용된 근거는 대체로 연구된 근거가 아니며 오직 필자의 생각과 논리적 추론을 거쳐 나온 결론이다. 필자 또한 하나의 사람이므로 필자의 논리적 추론에는 어떤 식으로든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즉, 이 글은 절대적으로 합리적인 글이라 할 수 없으며 단지 생각의 폭과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참고 자료로서 적합할 수 있다.
「악」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의 사고력이 넓어지면서 선악의 구분 기준은 이해관계와 시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선」 과 악의 기준이 모호해졌다 한들, 공동체와 다수에게 나쁜 행위나 상황은 분명 존재한다. 누군가 만약 스스로의 사익(私益)만을 추구하여 이기심을 바탕으로 공동체에 불리한 상황을 촉진시킨다면, 이는 다수에 의해 악으로 규정될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악으로 규정하고 논리를 펴나갈 것이다.
필자는 위와 같은 표준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아래 서술한 논리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해 관계가 어떠하든, 악 혹은 이와 유사한 행위를 행한 자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결론적인 관점에선 공동체에 불이익을 야기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은 본인과 가족이 배를 곯아 이를 단기적으로나마 해결하고자 빵을 훔쳤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이 빵은 저 제빵사가 돈을 벌기 위해 파는 것이고, 이를 얻으려면 정당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돈이 없으니 아사를 받아들이겠다' 라며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당장 눈 앞에 생존의 문제가 달렸는데, 도덕과 윤리가 무슨 소용인가?' 라는 의문이 들까? 나를 의지하는 나의 피붙이가 있다면 다수의 선택은 아마 후자일 것이다.
그렇게 본인과 본인의 가족이 굶어 죽는걸 잠시 모면하였다면, 이는 사람을 살렸으니 선 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빵을 훔쳤으니 악 이라고 봐야할까? 필자는 이를 두 경우로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정의(個人的正義) 와 공동체적 정의(共同體的正義), 흔히 「법」 (法)과 「윤리와 도덕」 이라 불리는 그것으로 나누어 생각해야 타당하다.
자신의 피붙이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좋아하는 정상인은 사실상 없다. 그러니 이를 살리는게 개인적 정의에는 가장 합당하다. 그러나 개인적 정의는 공동체적 정의와 동일시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법은 공동체가 분열되지 않도록 하는 합의점이자 최소한의 지켜져야 하는 선(線)이다. 이와 같은 가치가 훼손될 경우 공동체의 존속은 보장하기 어려워진다. 즉 이에 따른 처벌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위법의 정도와 동기가 이해의 범주라면 이를 참작해줄 순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판례」 는 이후 재판에서 큰 참고자료로 쓰일 만큼 공동체에서 「선례」 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다. 선례는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전통」 으로 진화할 것이고, 이는 이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만약 개인적 정의와 공동체적 정의가 동일시 되거나, 개인적 정의를 완전 참작하여 공동체적 정의가 무시되어 처벌받지 않는다는 선례가 생긴다면, 이후에 발생할 유사한 사건들은 모두 이러한 선례를 들며 자신도 이러한 결과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와 도덕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둔 최소한의 합의점과 선(線)에 해당하는 법은 참작을 감안하여 변형 될지언정 반드시 집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본 글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악은 질서를 흩뜨리며, 사익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공동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악으로 규정하고 추후 서술을 하고자 한다. 다만, 이 경우 공동체의 특성으로 인한 부도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규칙은 악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이를 하나의 공동체 문화로 간주한다.
완전무결한 「악」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종교, 더 나아가 상식적인 선에서 이야기 하는 「악마」는 악의 화신이자 이를 행하는 자이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며, 경우에 따라 (그러나 대체로) 상식 밖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악마는 스스로가 악 그 자체이며 이를 행하는데 어떠한 비용과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온전히 스스로가 자립할 수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개인일 때 모든 행동에 제약이 있으며, 자본에 국한되지 않은 비용이 존재한다. 인간은 반드시 타인과의 교류가 필요하며, 이 시점부터 인간은 완전무결하지 않다. 완전무결하지 않은 인간이 행하는 악 또한 완전무결하지 않으며, 이는 반드시 악을 행한 사람을 자멸의 길로 인도하게 된다.
불완전한 악은 어째서 자멸로 향하는가
인간 혼자서 행할 수 있는 영향력은 너무나도 작다. 그러나 개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룬다면, 그 영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악행을 저지를 때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은 쉽게 저지당할 수 있다. 개인이 저지르는 악행은 크면 클수록 빠르게 본인을 자멸로 이끌어 갈 것이다. 하지만 만약 연관된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를 저지하기 어려워진다.
많은 사람이 연관되어 힘을 보태주고 악행을 위한 집단이 구성된다면, 이는 걷잡을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되고 그 구성원들에 큰 사익을 안겨줄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불완전한 악은 다시 한번 이 집단을 자멸로 이끌어가기 시작한다.
구성원이 다양해질수록 사익 집단을 떠받치는 욕구는 다양해진다. 사익을 추구하고자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은 자신이 양보하는 것을 참기 어려워 할 것이다. '내가 만약 양보했다가 저쪽에서 약속을 어기면 어떡하지?' 와 같은 상대방을 의심하고 자신의 손실을 견딜 수 없어하는 욕망은 결국 구성원 간의 마찰을 일으킨다. 어떤 욕구는 상충할 것이고, 어떤 이해관계는 꼬일것이다. 그로 인해 구성원들간에 서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 분쟁이 다양하고 커질수록 이는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며, 구성원 간의 마찰은 비협조로 이어지다 결국 틀어진다.
위와 같은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은 수면 위로 올라와선 안되기 때문에 타인의 도움을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같은 사익 집단 내에서 도움을 요청한다면 오히려 내부 갈등을 촉발할 것이고, 집단 외부에서 도움을 요청한다면 이 악행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다. 즉, 모든 구성원이 스스로의 욕구를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지 않다면 내부 분쟁, 혹은 예측하지 못한 변수는 반드시 발생한다. 자그마한 구멍이나 마찰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며, 이는 자멸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된다.
악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
아무리 완전무결한 악이 스스로 자멸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악이 잠시나마 존재하는 동안은 사회, 더 나아가 인류 문명 전체의 손해나 해악을 끼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퇴보시킬 수 있다. 안타깝게도 악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려울지언정 가능한 선에서는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첫째는 산모와 가정의 절대적 안정과 평화이다. 산모의 신체/정신적 건강과 안정성, 가정의 분위기 등 아이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매우 안정적이고 평화로워야 한다. 산모의 상태는 태아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치며 이후 인성 부분에 매우 직접적인 기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산모와 그 가정에는 그 자체로 매우 높은 수준의 대우와 특혜가 주어져야 하며, 산모 본인이 오직 태아와 자신의 건강 관리에만 신경쓸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산모의 안정성을 바탕으로 이후 태어날 태아는 불안정한 산모에서 태어난 태아보다 안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비판적 사고 교육이다. 아이는 어릴 때 노출된 환경이 가치관 형성에 매우 크게 작용한다. 아이의 부모가 아무리 안정적이고 건강했다 하더라도, 이기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추후 아이에게 그대로 유전되어 앞서 말한 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아무리 부모라 하더라도 모든것을 믿고 따르는게 아닌, 스스로 생각 해볼 수 있도록 하는 비판적 사고방식을 기를 수 있는 건강한 교육이 필수다. 타인 뿐만이 아니라 자신 또한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기비판적 사고 또한 매우 중요하다.
셋째는 폭 넓은 추론 교육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라는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건의 발생 과정을 그냥 외워버리거나 특별히 생각하지 않지만, 이 과정에서는 수많은 이유가 존재한다. 이 이유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미래에 내가 할 결정을 위한 추론에 합리성과 합리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즉, 폭 넓은 변수를 고려한 추론을 바탕으로 내려진 결정은 합리적인 이유를 가진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나, 그리고 나와 타인의 관계와 역학에 대해 충분히 생각한 합리적인 결정과 행동은 대체로 위에 서술한 악에 포함될 수 없다.
넷째는 건강한 경쟁 환경 및 교육이다. 사람이 경쟁을 하지 않는다면 발전을 하지 않지만, 경쟁이 과도하다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된다. 만약 경쟁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까지 이어진다면 이는 서로를 짓밟으려는 파괴적인 경쟁이 된다. 따라서 파멸적인 경쟁보다 건설적인 경쟁을 선호하고 지향하는 가치관이 구축되는 것은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데 매우 중요하다.
위와 같은 방식의 교육은 사회를 건설적으로 이끌어 나가는데 핵심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야 하고, 지금부터라도 노력한다면 미래에 언젠가는 빛을 발할 것이다. 위에서 서술했듯, 개인 한명은 사회를 바꾸기에 너무나 미미한 힘이다. 그러나 자신의 주변인 세명만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한다면, 건설적인 사회를 구축해 나가는데 매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