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 독심의 불가능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독심의 불가능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사람은 모두가 다르다. 성장해 온 배경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철학도, 그리고 원하는 것도. 하지만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이는 축복이자 저주인 양날의 검이다. 하지만 결국 이는 문명 발전의 관점에서 저주로 기울것이고, 인류의 번성에 있어서는 축복이라 생각한다.
인류의 쇠락
모든 인간은 불신의 대상으로 출발하며, 타인을 구분짓고 배척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스스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불신을 하면서도 강제적으로 타인과 섞여서 살아야 한다.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이 사회는 불완전하며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내가 한다고 너가 한다는 보장이 어딨지?” “네가 안한다 해놓고 뒤에서 몰래 하는거 아니야?” 등등,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의심은 사건에 따라 사회의 기반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사회의 안정성은 매우 나쁘다.
개인의 예 1
나와 가까운 두 친구가 있다고 가정하고, 각각 A, B 로 칭하며, 본인을 C 로 칭하자. 친구 A 는 솔직하며 자신의 내면을 잘 털어놓는 친구다. 친구 B 는 자신의 이야기를 숨기며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때, 사람들은 친구 A 를 더 친하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
한 연구에 따르면, 실험 감독관의 유도된 질문 아래, 남녀 한 쌍이 연인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던 그룹은 서로의 약점과 내면을 일찍이 공유한 그룹이였다. 반대로 말해 본인의 취약점과 내면을 드러내지 않고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한 사람에 비해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5년, 10년, 어쩌면 20년동안 같이 지낸 친구 A 씨와 B 씨 중 서로에 대해 더 잘 아는 친구는 당연 친구 A 씨일 것이다.
하지만 군자보구 십년불만 (君子報仇 十年不晩) (군자의 복수는 십년도 늦지 않는다) 이란 말이 있듯, C 씨가 수년간 같이 지내온 A 씨는 C 에게 드러내는척 하며 자신의 진짜 비밀과 친해진 목적을 숨길 수도 있었다. C 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A 씨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었고 그에 따라 믿을만 하다고 여겼을 수 있다.
하지만 A 씨의 확실한 내면을 아는 것은 아니다. 입은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수년, 어쩌면 수십년간 같이해 온 친구도 언젠가 나를 향해 칼을 드러낼 수 있다. 정말 칼이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
개인의 예 2
사람에겐 눈치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것의 정확도는 장담할 수 없다. 누군가는 뛰어난 눈치가 있어 정말 높은 정확도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늘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눈치란 기본적으로 빅데이터와 같은데, 이 빅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서 상황의 분위기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때때로 상황과 분위기는 묘하게 실제와 어긋나있을 수 있다. 웃으면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하는데 각자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들어간다거나, 정말로 나쁜 분위기인줄 알았는데 제대로 일이 풀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감각도 마찬가지로 속거나 속이기 굉장히 쉬운 축에 속한다. 확실한 사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착시나 착청현상등이 있다. 즉, 눈치 혹은 감각은 생각보다 그다지 신뢰할만한 정보가 아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건 상황, 논리, 숫자 등 명확하게 제시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말은 거짓말이 가능하고, 논리는 허점을 흐리게 할 수 있으며, 숫자는 깨끗한 조작이 가능하다. 즉 개인이 받아들이는 정보는 상당히 믿을 수 없는게 많다.
조직의 예
조직의 경우는 더욱이 신뢰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한 대형 빌딩을 짓는데 두 건설사가 입찰을 시도했다. 건설사 A 는 건설 비용에 100억을, 건설사 B 는 150억을 입찰했다. 건설사 A B 각각의 계획서에는 장단점이 있었다. A 사는 비교적 저렴한 재료와 오래되었지만 그만큼 안정성을 입증한 공법을 사용한 반면, 건설사 B 는 값비싼 자재로 최대한 보수적인 설계와 탄탄한 최신형 공법을 사용한다.
이 경우, 건물의 용도에 따라 건설사는 A가 될 수도, B가 될 수도 있지만 시장논리에 따라 A사가 입찰에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만약 A 사가 입찰가의 절반을 깎아 안그래도 값싼 재료를 더 싸게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비리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는가? 확실한 감사를 하지 않고선 심증 뿐이다. 조직은 공적이여야 하고, 소식의 하나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개인 대 개인처럼 유죄추정을 할 순 없다. 더군다나 조직이 마음먹고 조작을 한다면, 수많은 진실을 엮어 하나의 거짓을 만들어내기에 이를 역으로 알아내는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즉, 아무리 공적이고 수많은 정교한 시스템이 떠받치고 있다 한들, 사람이 그 주역인 이상 신뢰를 하기까지에는 매우 깊은 경계심과 검토가 필요하다. 조직 대 개인이나 조직 대 조직 모두 시작은 불신으로 출발해야 한다. 개인보다도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이 조직을 상대하는 것이다. 조직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상정하며 만들어낸 거짓을 진짜인 양 내세울 능력이 있다.
독심의 불가능은 문명 발전의 관점에서 저주이다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건 저주이다. 조직 속에서 개인은 이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되뇌이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필시 당한다. 그게 나와 먼 사람이든, 비즈니스적 관계인 사람이든, 아니면 정말로 가까운 사람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대가는 쉬이 재단할 수 없다. 정말 미미할 수 있고, 어쩌면 사회적, 물리적 죽음에 다다르게 할 수 있다.
결국 이를 서로 대응하며 자신을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타인과의 충돌이 발생할 것이고, 이는 문명의 발전을 늦추고 어쩌면 후퇴 시킬 수 있다.
독심의 불가능은 인류 존속의 관점에서 축복이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 생각의 결이 바뀔 수 있다. 나 개인에게 있어 독심의 불가능은 양날의 검과 같다. 인간은 누군가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전제라면, 상대방 또한 나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나만의 정보, 남이 알았을 때 부끄러울 정보와 기억등이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개인에게 있어 매우 큰 축복이다.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또한 독심의 불가능은 축복으로 확장될 수 있다. 어떠한 공동체의 지도자를 선출한다고 가정하고,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보았을때 우러러 볼만 한 대단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을 하자.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모두가 우러러 본다 한 들, 이 사람 또한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 많은 실패와 어쩌면 그릇된 판단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을 수 있고, 과거의 부끄러운 사고관과 일련의 사건이 있었을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내용이 구성원들 모두가 알게 된다면, 그 위에 세워진 더 큰 이익을 가리게 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가정을 이루는데 있어서도 강한 이점이 있다. 흔히 말하는 「콩깍지」 가 그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선의의 거짓말」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의 감정이 완전히 메말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좋은 거짓말은 누군가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가정을 꾸리고 자손이 대를 이어가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를 더욱이 확장해서 생각한다면 독심의 불가능은 인류 번성에 생각보다 큰 기여를 할 것이다.
결론
결국 독심의 불가능은 인류의 문명 발전에 있어 안좋은 점을 가질 수 있으나, 인류 존속에 있어서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둘 중 어디에 무게를 실어야 하고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할까.
시스템은 그 기틀이 얼마나 유연하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무한한 열린 가능성을 제공하기도, 꽉 막혀 어떠한 가능성도 차단하기도 한다. 즉 우리는 투명한 보고 체계를 바탕으로 상호 견제를 확립하는 것이 매우 매우 중요하다. 그 중 특히 투명한 보고 체계는 매우 확실히 이루어져야 한다. 문명의 차가운 특성상 감정이 배제된 투명한 보고 체계는 더 큰 이익을 향하는데 노이즈를 크게 줄일 것이다. 이러한 대안을 통해 우리는 독심불가의 저주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독심불가의 저주를 거꾸로 이용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투명한 보고 체계를 확립할 때, 그 기반을 불신으로 두고 설계하게 된다면 논리적으로 그 불신을 무너트릴 수 있게 된다. 결국 이는 더욱 투명하고 탄탄한 보고 체계를 완성시키며, 역설적으로 불신을 신뢰로 바꿀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생각을 읽지 못하는 것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이용해야 한다. 불신을 토대로 신뢰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하여야 한다. 이는 인류의 존속이나 문명의 발전과 관계가 없다. 나쁜 것을 이용하여 좋은 쪽으로 활용하고, 좋은 것은 더 좋게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합리적인 선택이자 방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