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 발전 동기와 종착점


글을 읽기에 앞서
이 글은 2023년 2월에 작성 되었으며, 기술 수준은 2023년 2월 대중에게 공개 되어있는 기술들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현재 인공지능의 창작물과 활용에 대한 법안과 제도가 존재하지 않고, 현재 논쟁중인 상태에서 작성되었음을 감안하기 바란다. 또한, 이 글은 정제되지 않은 생각과 의견을 정리하며 작성하였기 때문에 일부 논리적 비약을 해결하지 못하였을 수 있다.
인류 문명 발전의 종착지
인류의 문명이 꾸준히 발전 해 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석기 시대부터 천천히 발전을 시작하여 20세기에 들어서는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21세기인 2023년, 전례없는 인공지능 모델들이 전 세계를 강타하며 화두에 올랐다. OpenAI 에서 개발한 GPT-3 모델, CompVis 그룹에서 개발한 Stable Diffusion 딥러닝 모델과 같이 뛰어난 모델들은 인간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할 작업을 몇초, 혹은 몇분만에 완성시킨다. 이 때문에 혹자는 인공지능을 두고 윤리와 법적인 문제를 논하고, 다른 자는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GPT-3, Stable Diffusion 과 같은 모델들은 물론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지만, 동일 분야의 인간이 작업한 그것보다 완성도는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아 아직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 보완되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것이다. 이미 Copilot, ChatGPT 와 같은 언어 모델 기반 인공지능 서비스들은 실제 업무에서 빛을 발휘 하기도 하고, NovelAI 와 같은 이미지 모델 기반 인공지능 서비스들은 예술 대회에서 대상을 탄 적이 있다. Copilot, ChatGPT, NovelAI 와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들은 매우 저렴한 가격만으로 동일 가격 대비 사람의 노동력보다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즉, 가성비가 무한함에 가깝다. 이는 곧 인간의 노동력이 인공지능 모델에게 대체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제까지 모든 노동, 창작, 제조, 설계등 사회와 경제의 기반이 되는 것들은 인간이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인간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그러나 이것은 머지 않은 미래에 인공지능이 다수를 대체할 수 있다. 높은 노동 가성비를 가진 인공지능은 많은 기업들에 의해 사용될 것이고, 이는 기존 작업을 하던 관련 직원들의 해고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체 과정이 단 한번만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결코 없다. 가장 단순한 단계의 작업이 대체된다면, 그 다음 단계가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생산라인을 예로 들어보자. 자동차의 양산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컨베이어벨트는 단순히 조립할 섀시를 일정한 속도로 한 지점부터 다른 지점으로 옮겨주는 역할을 하는 것 뿐이였다. 실제 조립은 인간이 해 왔다. 그러나, 이후 기계의 정밀도가 발전하며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조립하는 많은 인력은 기계로 대체되었다. 이와 같이 가장 단순한 작업, 즉 밀기와 같은 시스템은 컨베이어벨트로 대체되었고, 이후에는 그 다음으로 단순한 작업인 조립이 대체되었다. 이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이전 단계가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면 그 다음 단계 또한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고력이 필요한 작업은 과연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Google DeepMind 의 AlphaGo 대 이세돌 경기만 보아도 기계의 연산은 조건과 자료만 있다면 인간보다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경기 이후 불과 4년 후 등장한 GPT-3 모델, 5년 후 등장한 Stable Diffusion 모델, 그리고 GPT-3 모델을 가공하여 만들어진 ChatGPT 와 같은 인공지능들은 실제로 인간의 창의성과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을 인공지능이 대신 처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곧 기업체에게 있어 매우 능력 좋으며 값 싼 직원을 얻는것과 마찬가지다. 기업주로서 이보다 더 환상적일 수 있을까? 값싼 노동자가 수준급 제작물을 만들어 내며 그 시간 또한 수 배 이상 빠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게 있어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을것이다. 여러 기업들은 최대한 빠르게 직원을 인공지능으로 대체 할 것이며, 가장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굵직한 임원직을 제외한 나머지 사원들은 모두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 즉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그 굵직한 임직원들 뿐일 것이며, 이는 사회와 경제, 더 나아가 인류의 자멸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현대 사회에서 제도적인 신분과 계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질적 신분과 계층은 여전히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의 보유량은 곧 그 사람의 계층과 신분을 나타낸다. 이러한 계층과 신분은 안정적인 분포를 유지하여야 한다. 만약 이가 붕괴된다면 사회의 안전함, 심지어는 물리적 안전함까지 침해받을 수 있다. 만약 최상위 층과 최하위 층의 완충인 중간 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최하위 층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물고 뜯을것이며, 이는 곧 위해를 가함으로서 타인의 재물을 강탈해 가는 것과 같이 자멸의 길로 들어서는 지름길이다.
기업의 과한 인공지능 채용은 위와 같은 상황의 발생을 촉진시키며, 이는 곧 인공지능이 의식을 가지지 않았음에도, 인간으로부터 비롯되어 인공지능이란 촉매로 가속된 자멸을 의미한다. 즉, 인류에게 있어 마지막 발명품이 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자멸을 야기할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인류 문명 발전의 동기
앞서 말한대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자멸을 야기할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는데, 대체 어떠한 이유로 똑똑하다는 인공지능 연구원들은 개발을 멈추지 않을까? 그들은 과연 인공지능이 도구로서 인류의 자멸을 촉진하는 촉매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물론 못했을 수 있지만, 연구 과정에서 자신들의 작품인 인공지능이 내놓는 결과물을 보고 소름 끼치지 않았을리 없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의문을 해결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개발이 문명 발전에 일부라면, 대체 문명의 발전은 어디를 향해, 어떠한 이유로 발전을 하는 것일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보며 문명의 발전을 추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최초의 인류는 사냥을 다녔고, 채집을 하며 살아남았다. 흔히 말하는 원시 인류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간석기와 같이 정교하게 만든 도구를 사용하여 조금 더 편리한 작업을 하며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청동기, 철기 시대를 지나며 뗀석기, 간석기와 같은 돌 도구는 청동과 철을 마음대로 주조할 수 있게 되며 더 성능이 좋고 내구성이 뛰어난 도구들을 만들어내었다. 이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높은 효율로 더 많은 작업을 석기 도구보다 편리하게 할 수 있게 해주고, 전투를 하는 이들에게는 높은 살상력으로 적은 힘으로도 석기 무기보다 편리하게 적을 처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플라스틱의 시대에는 적당한 단단함을 가진 값 싼 물건이나, 적절한 유연성을 가진 포장제와 같이 기존보다 편리한 대체제를 제공하였다. 반도체 시대에 들어서는 복잡한 연산과 자료 처리들에 강점을 맞춘 컴퓨터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정보 처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문명의 발전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것, 바로 편리함이다. 문명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 편리함은 양날의 검과 마찬가지다. 이 뚜렷한 문명의 목적으로 인한 부작용은 곧 기독교나 천주교에서 칭하는 칠죄종의 일부로 이어진다.
문명은 항상 자본주의 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였다. 이는 자본을 통하여 인간이 편의성을 찾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고, 많은 자본을 확보하려면 다른 자들에 비해 특출난 능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 문명의 평균을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간의 편의성은 칠죄종중 '탐욕'과 '질투' 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생존을 목적으로 시작하지만, 만약 생존이 오직 목적이였다면 문명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뛰어난 문명을 자랑했던 로마 제국은 몰락 전까지만 해도 과도한 부로 인해 음식이 넘쳐나 과식 후 구토를 하여 개워내는 등 불필요하게 음식과 자원을 소비하였다. 이 과정에서 타국 소유의 자원에 대한 탐욕과 질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적당량의 자원만 소비하며 군사적 발전을 필요치 않게 되고, 이로부터 오는 지적 발전 또한 필요치 않게 될 것이다. 즉, 문명은 그 시간에 고정되어 있을 것이다.
인간의 탐욕으로부터 함께 오는 다른 칠죄종은 '인색' 과 '분노' 이다. 탐욕을 충족 하였을 시에는 이를 잃지 않으려는 인색함, 그리고 탐욕을 충족하지 못하였을 때 발생하거나, 타인의 탐욕으로 인해 본인이 입은 피해로 인한 조절할 수 없는 분노가 그것이다. 또한, 위에서 간단히 설명한 ‘안정적인 사회적 계층 분포’ 의 하위층에 존재하는 자들은 스스로의 탐욕을 채우지 못한 상태가 많다. 이로 인해 복권이나 사기와 같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나태함 또한 탐욕으로부터 불러오게 된다.
문명은 분명 편리함을 가져다 주는 존재이지만, ’탐욕’ 과 ‘질투’ 로 출발하여 ‘인색’, ‘분노’, 그리고 ‘나태함’ 까지 가져다 주는 양날의 검이다. 적절한 양의 탐욕과 질투는 개개인의 발전에 있어 이로울 수 있으나, 브레이크 따윈 존재하지 않는 멈출 수 없는 문명의 거대한 굴레바퀴를 계속해서 굴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양의 탐욕과 질투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명은 인간 스스로의 득을 위해 발전을 시키며, 탐욕에 대한 욕구가 멈추어지지 않는 한은 영원히 발전 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충족하기 위한 문명의 극
위에서 말했던 바와 같이, 문명은 편리함을 가져다 준다. 이제껏, 그리고 앞으로도 문명은 인간의 물리적인 편안함을 가져다 줄 것은 명확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문명이 물리적인 편안함을 충족 시키는 것에서 그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만약 문명이 물리적인 편안함을 모두 충족시켜 주었다면, 과연 더욱 발전한 문명은 물리적인 편안함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인 편안함을 가져다 줄 수 없을까?
가톨릭과 천주교의 칠죄종을 참조하여 작성했다 한들 가톨릭과 천주교가 결코 무조건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칠죄종은 분명 인간에게 있어 무시하기 힘든 욕구와 본성의 일부를 개념화 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한번쯤은 칠죄종의 유혹을 겪는다. 인간이 이 본성을 제어 할 수 있도록 윤리와 도덕의 개념을 사회에 도입 한 이유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며, 대신 사회와 국가, 나아가 인류 문명에 이바지를 하며 발전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많은 정신적인 병을 야기할 수 있다. 만약 문명의 기술이 극에 이른 시점에 등장한 한 기계로 이를 지키지 않으면 어떨까? 이 상상의 기계는 개개인의 의식을 독립적인 가상화 환경에 연결하고 신경계에 인위적 자극을 통해 현실이 아님을 인식할 수 없게 하되 스스로가 세계의 창조주가 될 수 있는 가상 환경을 구현할 수 있으며, 그 가상 환경 안에 영원히 가둬 둔 후 생명 유지를 시킨다. 그렇다면, 과연 그 문명의 끝에 만들어진 이 상상의 기계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 정신적 편안함과 행복, 충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기계는 과연 윤리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 상상의 기계 속에서 창조주가 된 사용자는 스스로 피조물 사이에서 지낼 수 있고, 자신이 가상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과연 이 사람의 부족한 욕구를 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는 곧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가상 환경에서 일어나는 데이터의 변조이니 실질적으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므로 도덕적,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으로는 이는 신체를 구속하며 벌어지는 행위이기도 하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상상 또한 비윤리적이므로 도덕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렇듯 문명의 끝에서는 결정하기 어려운 도덕적 문제가 도사린다. 당장 현재까지만 해도 펜타닐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는 고통을 참기 힘든 환자들께는 잡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지푸라기지만, 오남용자에게는 스스로를 죽일 수 도 있는 위험천만한 약이다. 만약 이 인류 문명이 그 끝에 도달하면 어떤 새로운 난제가 있을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문명의 발전 동기는 멈출 수 없는 거대한 엔진과 같지만, 그 종착점은 깎아지른 절벽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