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은 저주인가 축복인가


망각은 저주인가 축복인가
많은 사람들은 망각을 저주라고 하기도 하고, 축복이라고 하기도 한다. 필히 중요한 내용을 잊어 본인에게 해가 된다면 그 사람은 망각을 저주라 할 것이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벗어나 이를 잊어 심신이 편해진다면 그 사람은 망각을 축복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류의 존속, 더 나아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함이면, 망각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읽기에 앞서
본 글은 사람 개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에 대해서 생각했고, 따라서 반드시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즉, 이 글이 절대적으로 합리적이라는 뜻이 아닌 멀리, 그리고 크게 보았을 때 필자의 생각을 서술한 글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글에서 서술할 때 사용된 근거는 대체로 연구된 근거가 아니며 오직 필자의 생각과 논리적 추론을 거쳐 나온 결론이다. 필자 또한 하나의 사람이므로 필자의 논리적 추론에는 어떤 식으로든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기억이란
망각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기억] 이 무엇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억을 단순히 정보의 보존으로 놓고 본다면 분명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이미 엄청난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동굴 벽화부터 시작해 석판, 종이, 이제는 디지털 기록까지, 인류는 지속적으로 진보된 저장매체를 활용하고 바꿔가며 수많은 기록을 저장했다. 하지만, 이 기록에는 그 기록의 감정이 결여되어있다. 기록을 이해하고 그 정보를 암기한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체화할 순 없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얼마나 처절한 전투를 벌였을지 알 수 없다. 오직 장군의 난중일기를 통해 그를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당시 백성들과 군사들이 느꼈을 처절함, 위기감, 상실감, 고통을 절대로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영상과 음성 매체로 당시의 상태에 더욱 몰입도를 높일 순 있지만, 이 또한 편법이고 공감도만 높일 뿐, 그 자체의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영화 [명량]을 보고 전쟁의 참상을 보고 들을 수 있었지만, 피부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영화를 다 본 후 우리는 이를 잊는다.
즉,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온전한 [기억]이란 그 상황에 대해 모든 감각과 그 당시로부터 전달되는 형이상/하학적 정보 모두를 일컫는 말이다.
기억의 노이즈
집단의 기억력은 구성원의 기억력과 수명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인류 전체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놓고 보았을 때, 이 집단의 기억력은 개인이 느낀 기억보다 난잡하다. 누군가는 기억을 잃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해 어떠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 할 수 있고, 누군가는 없는 기억을 사실로 믿으며 그러한 일이 현실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즉, 노이즈가 매우 심하다.
하지만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면 개인이 잊거나 없는 일을 기억한다면 그것 또한 노이즈이지 않은가? 심지어 보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물론, 이건 정확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순 없다. 개인과 집단의 기억은 그 중요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 개인의 기억은 문제가 발생했을 시 개인이 그 기억을 의심하든 의심치 않든 상관없이 결국 스스로가 미래에 결정하는 데 활용되며 그 결정에는 본인이 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집단은 그렇지 않다. 집단은 다수가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기억의 노이즈는 집단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만약 어떠한 결정이 자신의 존속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면, 개인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한 사람이 죽는 것과 집단의 잘못된 결정 탓에 모두가 죽는 건 의미가 크게 다르다. 즉, 원론적으로는 집단을 한 사람처럼 볼 순 있으나, 그 무게감이 현저하게 다르므로 이는 동일시될 수 없다.
망각은 저주이다
망각은 앞서 말한 기억의 노이즈 중 일부이다. 그러나 망각은 없는 기억이 만들어지는 것보다 위험하다. 모든 사람에게 발생하고 그 정도를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집단의 결정에 있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가장 좋은 예시는 전쟁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쟁은 당연시되어 왔다. 땅을 넓히고, 세력을 확장하여 자신의 사람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살기 위함도 있고, 혹은 단순히 지도자의 욕심이나 감정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전쟁의 범위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장되었고, 이는 수많은 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물리적 심리적 피해를 줬다. 역설적으로, 인류는 회복하기 힘든 수준의 상처를 입고서 대규모 전쟁을 그만두었다. 또한 전쟁의 낌새가 보인다면 국민/백성들은 이를 극구 반대하고 관계자를 질타하여 전쟁의 확산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최근 그러한 정신은 눈에 띌 정도로 옅어지고 오히려 전쟁에 찬성하고 이를 즐겁게 여기는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 실제 한 국가의 국민들은 자신의 국가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90%의 찬성률을 보인다. 어떤 나라는 현재도 전쟁 중이며 민간인 사살도 서슴지 않는다. 또 다른 나라는 계속 전쟁을 시작하려고 간을 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를 질타하며 실질적으로 제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류 전체가 전쟁의 참혹함을 잊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모든 인류가 당시 겪은 전쟁을 온전히 기억하고, 그 기억이 계승되어 왔다면 이러한 사태는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았을 것이다.
즉,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인류는 망각으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감정적 통제가 옅어지고, 이는 과거 2차 세계 대전의 과오를 다시 저지르게 되지만, 무기의 발전과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1, 2차 세계 대전을 합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수준의 사상자와 문명의 후퇴를 겪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인간에게 있어 미약한 수준의 트라우마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재현되어선 안 되는 것들은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감정적인 영역에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기억의 소실은 이러한 제동을 무력화하고, 결국 이는 인류에게 독이 된다. 즉, 필자는 위 주제 “망각은 축복인가 저주인가”에 대해 망각은 저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